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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29. 2023

바보 통장을 꺼내다.

돈으로 해결되는 일들은 꽤나 많다. 

[1년 전에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손을 봐 다시 발행합니다.]


벌써 1년 전의 이야기이다. 어느 볕 좋은 4월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5인이라 콜벤을 예약하기로 했다. 분명 월요일 11시로 예약을 하고 결제를 눌렀다. 마침 카드가 기한이 되어 결제가 안된다. ㅇㅇㅇ 택시를 부르기 위해 ㅇㅇㅇ 뱅크로 연동을 요구한다. 어찌 저찌 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28,700원만 이체를 시키면 될 일이지만 굳이 정수로 30,000원을 이체시키고야 만다. 그들은 이것을 전략이라고 부르지만 나에겐 횡포이자 전횡으로 느껴진다.

어찌어찌 예약을 마쳤다. 


띠로리로 롱~ 

십여분이 흘렀을까? 알지 못하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도착했습니다."

"네?"

"택시 부르신 거 지금 도착했다고요."

"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내일 도착해야 할 콜벤이 지금 집 앞이란다. 나는 혼미한 정신에 그만 당일인 일요일 오전 11시로 예약을 해버린 것이다. 


2시 출발 비행기였다. 

택시를 예약하기 삼일 전부터 혹시 모를 불상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시간을 앞당겨 늦어도 11시에는 집에서 출발하자고 고집을 부렸다. 항공 수속은 1시간 30분 전에는 해야 한다는 안내문구를 내세워 불편을 초래하고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건 내일의 계획이었지 오늘의 계획은 아니었다. 3시간 전에 20분 거리의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부산을 떤 결과가 겨우 이런 거였다니. 깊은 좌절감이 밀려왔다. 


돌발상황에 대한 대비는 완벽한 실책으로 인해 내부의 붕괴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분노에 얼굴이 시뻘게 졌다. 울고 싶은 순간 와이프가 가게문을 열고 들어온다.


"  안아줘. 엉엉."


장황한 설명과 한탄을 들어주던 와이프는 함께 재촉한 자신의 탓도 있다 했다. 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이건 당신 탓으로 하자."

"."

"고마워!"


마음이 가벼워지는 데는 역시 남 탓만 한 게 없다. (유치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나의 내면이여.)


나는 바보 통장을 열기로 했다. 나는 그 통장에 쓸 수 있는 돈이 2,000만 원 정도가 있다. 물론 있지도 않고 인출도 안될 금액이다. 살면서 대략 생각해 둔 예금인데 대충 내용은 이러하다. 세상 살면서 대충 2,000만 원 정도 손해 보고 산다~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개념이다. 나는 가끔 이 통장의 존재 자체를 잊곤 해서 무리하게 마음을 쓰다가 내상을 종종 입곤 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대체로 심플한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보통장은 나의 바보 같은 행동을 합의해 주는 일종의 변호인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나 이런 바보 같은 실책에는 이만한 특효약이 없다. 내 자전거에 스스로 각목을 끼워 넣는 일 말이다. 


"제가 합의했으니 그 사건은 잊으시지요."


오늘 일은 바보 통장을 기억했기에 금방 잊힐 것 같다. 맵을 통해 멀어져 가는 기사님의 위치 표시 마크가 경쾌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맛있는 치킨 한 마리 시켜 드시고 건강하시라. 나는 제주로 비행을 하리다.


바보통장 덕분에 홀가분 해졌다.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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