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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30. 2023

나의 주식 계좌가 깡통이 되었습니다.

미수를 써버린 자의 최후.

틱 몇 개가 큰 폭으로 출렁이더니 반대 매매가 자동 체결되었다는 창이 모퉁이에 떴다.

쿠구궁 하는 덜컹거림이 온몸을 때린듯하다.

5년여간 쌓아 올린 주식계좌의 잔고와 주택 구입자금으로 모아둔 돈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눈앞이 깜깜해지거나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토록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지는 않았다.

모퉁이의 그 창이 깜빡깜빡 거리며 나의 방이 시뻘겋게 물드는 것 같았다.


'나는 절대 쓰지 말라던 미수를 쓰고야 말았다.'


2004년 즈음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방향이 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주식 트레이더가 되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주식이야 말로 시궁창 같은 나의 인생을 구원해 줄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지루한 교장선생님 조례사 같겠지만 매번 이와 유사한 '계시'와도 같은 느낌으로 주식시장을 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개미 군단의 맨 끝줄에 기어코 나까지 합류하고 말았다.'


나는 일산구에 위치한 화정 도서관의 모든 경제 서적을 읽을 기세로 책을 독파해 나가기 시작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벤저민 그레이엄, 워런버핏의 책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거시경제와 세계 경제의 원류를 찾아 책을 파고들었다. 수험생처럼 하루 4시간만 자고 코피가 흐를 정도로 책을 봤다. 그래봐야 가진 돈이 없으니 처음에는 소소하게 시작했다. 100만 원을 가지고 시작한 계좌가 얼마 후 300만 원이 되었을 때는 이제 곧 신문에 나고 대회를 나가거나 인지도를 높여 부띠끄에 스카우트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혹은 어느 세력에서 나를 눈여겨보고 선수로 쓰이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망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자만하지 않았다. 가치투자와 스윙을 병행하며 조만간 아주 '큰' 자산을 굴릴 그릇이 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긴 횡보장에서 탐욕을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초단타고수의 책에 현혹되어 그 세계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수익이 나는 듯했다. 모니터 위로 현란하게 마우스를 날려가며 화려한 클릭질로 거래를 하곤 했다. 그게 멋있는 일인 마냥 말이다.


무려 4년간 그런 형태의 거래로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근근이 주식판에서 버티고 있었다. 삼천리 자전거나 햄버거프랜차이즈였다가 제약사를 하던 회사로 큰 재미를 본 영웅담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어느 순간 뭔가에 홀린 듯 찾아온다. 돌이켜 보면 모든 타이밍이 그렇듯 악운은 참 시의 적절한 귀신같은 면이 있다.


놀랍도록 익숙한 바로 '그' 클리셰가 등장한다.


'나는 작은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저축과 대출을 받아 통장에 모으고 있었다.'


계산해 보니 1,500만 원 정도가 모자랐다. 자본금이 이렇게 쌓였으니 며칠만 잘하면 돈을 불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이프에게 떳떳하게 돈을 구했다며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첫 줄에 쓴 문단이다. 나는 미수거래를 하고 3일 후 계좌에 있는 모든 돈을 날렸다. 아파트 구입자금으로 모아둔 모든 돈을 말이다. 남은 자금이라곤 당장 살고 있는 빌라 보증금 1,0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날 저녁 나는 와이프에게 이실직고했다. 와이프도 주식으로 내가 어느 정도 잃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겠지만 '올인'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표정이 변했다. 한 여름임에도 뼛속을 에이는 한기로 빌라의 방안이 가득 찼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

나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날 미수거래로 단타를 치고 있었다.

나는 불나방이었고 머리가 터진 채 늘어져 있었다.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마음속 그 진한 패배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와이프가 이성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튿날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 1,500만 원을 깎아주시면 오늘 저녁에 계약하겠습니다."

"..."

부동산 아저씨의 한숨이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날 저녁 그렇게 충동적으로 아파트를 계약하게 되었고 은행에는 아파트 담보 대출을 90%를 받았다. (매도한 집의 집주인도 아마 똥줄이 탓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미칠 듯이 긴 노동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와이프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진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하면 믿을 것인가? 15년 전의 그 교훈으로 나는 주식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떼어놓게 되었다. 어지간해서는 주식의 '주'자도 꺼내지 않는 편이다.


2023년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미국은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고 자유무역정책을 버리고 자국보호경제 정책으로 선회했다. 아직 이렇다 할 대형 악재가 터지지 않은 것은 뭔가 불안하다. 늘 그렇듯 사람들은 제물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방점' 혹은 '낙인찍기' 정도로 설명하고 싶다. 모든 위기에는 이름을 붙일 그럴듯한 '위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IMF 사태가 그랬고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그랬다.

콕 집어 하나의 '사태'를 만들어야 '진짜' 위기가 그 사태 '때문에' 왔다고 치부하고 모든 밭을 갈아엎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지금 우리는 어떤 사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락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질 희생양 말이다.


텅 빈 주식계좌의 숫자 '0'은 참으로 공허했다.

그간의 노력과 정신적인 소요들이 한순간에 '0'이라는 숫자로 인해 무위로 돌아간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 당시의 깡통계좌는 훗날의 나에게 아주 큰 교훈이 되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15년 전에 구입했던 지하철 인근의 작은 아파트는 아직도 보유 중이다.

조만간 치하철이 하나 더 뚫린다는데 착공식을 하기 전까지는 믿지 못할 이야기이다.


'잔혹한 교훈일수록 진짜 피와 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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