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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30. 2023

할머니의 음식이 특별한 이유

추억의 맛일까.

흔히들 고향의 맛, 할머니 손맛,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국 등으로 수식되는 맛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과 정성 그리고 추억이다. 


없이 살던 그 시절 혹은 영원히 떠나버린 누군가로 인한 그리움은 그때의 그 맛을 더욱 진하게 한다. 

나 역시 그런 맛이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쪄주신 고구마가 그랬다. 울산의 이름 모를 동네 시골집에는 뒤편에 밭이 있고 닭장이 있었다. 부엌에는 큰 가마솥이 두 개 걸려있었고 장작으로 방도 데우고 밥도 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겨울 할머니는 뒷밭 장독대에서 묻어둔 김장김치를 한 포기를 꺼내었다. 막 쪄낸 뜨거운 고구마에 손으로 주욱 찢은 김장김치를 올려주었다. 고구마는 어찌나 달고 김치는 청량하고 아삭한 지 그 식감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맛으로 남고 말았다. 그 후로 만난 어느 고구마도 그때의 고구마에 미치지 못했고 나는 고구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척!

커다란 가마솥에서 할머니는 별의별 요리를 다 해내셨다. 메뚜기를 두어 줄 (이게 맞는 말일까? 들판을 쏘다니며 기다란 벼에 메뚜기 등을 꿰어 두어 줄 잡아 집으로 오곤 했다.) 잡아와도 소금을 팍팍 치고 와장창 볶아내었다. 감자나 옥수수를 찌는 건 예사였고 밥이며 국, 탕 찌개, 조림 못하는 게 없으셨다. 누룽지가 소복이 쌓여있고 숭늉이 서늘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할머니의 재주는 참 신통했다. 가마솥의 불규칙한 열감을 어떻게 파악해 내시고 젓가락 한번 찔러보지 않고 고구마며 감자를 포슬포슬하니 잘도 쪄내셨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할머니의 식재료는 뭔가 예사롭지 않았다. 신문지에 둘둘 쌓인 소주병은 세상 고소한 들기름이었고 정체 모를 봉지에 담긴 빠알간 고춧가루는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특상품이었다. 시대가 흐르고 인터넷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나서야 할머니가 그런 물건을 구한 곳이 연로자들만의 가르텔 속에서 힘겹게 구한 것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다. 마당 구루마에 가죽이 벗겨져 말려지고 있는 토끼도 옻나무도 손주입에 넣을 생각으로 열심히 구하고 말리셨다.


해마다 메주를 떴고 방 하나는 늘 쿰쿰한 방이 되곤 했다. 아랫목의 뜨신 이불 밑에는 장자가 일 마치고 돌아오면 먹일 커다란 고봉밥그릇이 쉬고 있었다. 예전에는 밥그릇이 크기도 컸고 황동으로 뚜껑이 덮여 있었다. 

소반 위에 한 상 차리고 국을 떠올리고 아랫목에서 뜨끈한 밥공기를 꺼내는 것이 일상적인 저녁상이었다. 

아빠가 그런 할머니의 세간살이들을 마구 부수지만 않았어도 나는 할머니의 밥을 오래오래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손맛 비결은 3가지이다. 

1. 어디서 구하는지 모를 뛰어난 최상급 식재료들 

2. 불을 아주 아주 잘 다룬다. 불속성 만렙

3. 손주를 잘 먹이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과 사랑


그리고 적당한 추억보정이 들어가 있다. 아빠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나도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는 아마도 할머니의 맘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나이 먹어갈수록 할머니가 보고 싶다. 

그때 맞아 죽더라도 할머니 곁에 남아있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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