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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06. 2023

더 이상의 인연을 허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로움과 고립의 자세에 대해.

어느 정도 살다 보면 어느 날 어느 순간 지독한 심연의 외로움을 느낀다. 한 번도 무리 지어 보지 못한 인간은 진정한 외로움이 뭔지 모른다는데 그것은 어쩌면 잘못된 말인지도 모른다. 외로움이란 혼자만의 것이지 조금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손가락의 아픔이 타인의 죽을병 보다 아프듯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판단해서는 안되며 그리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외로움은 단지 한 개인의 내적 방향성에 의한 깊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곳에 타인의 자리는 없다. 


부모와 만나고 조부모, 이모, 삼촌, 고모, 사촌 등 일가를 만난다.

친구를 만나고 선생을 만나고 강사를 만나고 사범님을 만나고 멘토를 만난다. 

직장동료를 만나고 상사와 후임을 만나고 선임과 후임, 대장과 사장을 만난다. 

술자리에서도 만나고 소개팅에서도 만나고 여행을 가서도 만난다. 

인간사 인사가 만사라 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만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번쩍 하고 외로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 순간에 계기나 동기 따위는 없다. 

흩날리는 벚꽃에 나부끼는 커튼 자락에 스산한 눈송이에 따가운 햇살에 매미의 지저귐에 뜨거운 해장국에 푸르른 달빛에 그저 슬며시 통탄할 만큼 외로워지는 것이다. 원망의 대상도 없이 원망스럽고 누구의 탓도 아닌데 탓하고 싶은 마음만 남을 만큼 외로워진다. 이는 뿌리 깊은 외로움과는 궤가 다른 외로움이다. 다급하게 설명하자면 스스로 만들어낼 고립의 시작을 알리는 외로움이다. 이는 불쾌하고 음습한 향을 내뿜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득한 그을음과 같은 묘한 흔적을 암시한다. 


더군다나 사무치게 외로워진다. 우리는 더 이상의 인연에 대해 스스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마는 시기가 온다. 이는 아주 냉혹하고 냉정한 검표원의 고압적인 태도를 떠 올리게 한다. 4시 30분 초시계가 끔뻑하는 순간 차갑게 돌변하고야 만다.


'자. 여기까지 입장하신 분 이외에는 더 이상 입장은 불가능해. 어렵단 말이지.'


내 마음에 탑승할 수 있는 인연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선언을 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지 모른다. 누구든 그리하리라 작심하기도 전에 검표원이 먼저 나서서 인연을 통제해 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뒤늦게 내 안의 검표원이 이미 문을 닫아버렸다는 사실을 느끼곤 절망하거나 천천히 그를 인정하고야 만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그냥 '아는 사람'의 지위를 곤궁하게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외로움은 스스로의 고립에서 오는 달무리 같은 희미한 띠 속에 존재한다. 

서성이는 발걸음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그 희미한 달무리는 보일 듯 말 듯 마주칠 듯 말 듯 마음을 희롱하며 주위를 알랑거린다. 본격적인 외로움의 전초전에 임할 자세와 분위기 중에 분위기만 차용해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이를 매우 첨예하게 느끼곤 한다. 


마음은 고등학생의 그것이나 신체는 이미 뻣뻣해져 버린 아저씨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라는 육신과 정신은 날이 갈수록 참혹하다. 때로는 나의 소박하고 평할 것이 없는 몸뚱이를 보고 있자면 내가 말하는 고귀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마치 어울리지 않는 공주풍의 시스루 잠옷을 입은 것처럼 남사스러울 때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오욕이며 자아낸 수치심을 어디로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를 기분이란 참으로 '전통엿'같은 것이다. 이런 걸 처절한 외로움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칭하고 싶다.


더 이상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작정당하고야 말았다. 인간에 대한 순수한 동경을 잃어버린 것이다. 만나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인연들만 득시글 해질 것이다. 진의를 알지 못하고 타인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알려하지도 않을 것이며 무관심 속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달관이 경지이며 흘러가는 대로의 내맡김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진심으로 대했던 마지막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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