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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06. 2023

바늘과 전기

목숨은 내 것이 아닌가 봉가.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의 무심한 태도에 가장 큰 상처를 받곤 한다. 나를 낳아준 부모 혹은 배우자가 주는 일상적이고 만성적인 상처야 말로 마음에 큰 흠결을 만들곤 하는 것이다. 그 상처가 설마 '물리'적 상처일 줄이야.


어느 날 나는 바닥 청소를 하다 작은방 바닥의 데코타일 사이 아주 작은 틈에서 긴 바늘을 하나 찾아내었다. 문 앞의 통로 쪽이라 시간이 지나 그게 튀어나온다면 누군가의 발가락을 찌를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것이 나일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딸이거나 아들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 하나는 발에 바늘이 꼽힐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시간문제일 뿐. 


"바늘이 이런 곳에 있었어. 큰일 날 뻔했네."


바늘의 한쪽을 눌러 가까스로 바늘을 틈에서 꺼내며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아. 그거 예전에 본 건데 틈에 들어가서 그냥 둔 거야."

"......"


나는 즉각적으로 안 좋은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야!!! 이걸 봤으면 제거를 하던가 나한테 이야기를 해야지. 누군가가 찔리면 어쩌려고 이걸 그냥 방치해 둬?"


"아... 뭐 그 사이에 박혀 있어서 안 나올 줄 알았지. 말 안 해서 미안해."


순간 굳어버린 나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아내는 즉각 사과를 했다. 더 이상 나도 지나친 말을 해봐야 비난 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니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참기가 힘들었다. 사실 이런 유형의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아내의 무던하고 태평한 성격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는 건 결국 '나'일 경우가 가장 컸다. 특히나 안전에 관한 무관심과 불감증은 유독 안전에 예민한 나의 성격에 기름을 붓는 촉매의 역할을 했다.




'어느 해에는 감전사고로 죽을 뻔했다.'


어느 날 컴퓨터 스피커가 작동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스피커의 상태가 어떤지 전기 코드를 꽂았다. 순간 '부지지지지' 하는 느낌이 들며 '펑' 하고 콘센트에서 불꽃이 일며 터졌다. 나는 손가락 두 마디가 검게 타올랐고 순간 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황급히 손을 떼며 뒤로 튀어 나갔다. 어릴 때 사출공장에서 일하며 전기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에서 가정용 220v여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업용 전기의 경우는 전기가 감전되는 순간 근육이 위축되어 감전부를 손으로 움켜쥐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어. 그거 전선이 까져서 가끔 스파크 일어나던 건데 내가 깜빡하고 말 안 했네."


'x발... 이것이 진정 짜릿한 결혼생활이라는 건가.' 


황천길 중간의 스틱스강 나루터에서 발목을 살짝 적시고 돌아 나온 심정 속에 나는 입으로 거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작고 사소한 일이 누적되어 적당한(?) 사고가 발생한다. 적당한 사고가 중첩되면 언젠가 큰 사고가 나는 것이다. 비단 국가단위의 재난이 아니라 일상적이며 일반적인 가정 안에서도 이러한 유형의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라는 이름 속에 나만 겪고 있는 노이로제인 것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이 있다. 서로가 상호보완하고 상충하며 살아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의도가 있든 없든 계속해서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무관심한 습관을 가진 것에 대해 염증이 일어나 버린 경우는 어쩌란 말인가. 무관심이 반복되는 것을 착하다고 포장해 버리면 주변의 누군가는 속부터 썩어 들어간다. 


보험 증서를 뒤적여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

- 내 몸은 내가 지키자.

- 안전 안전 안전 또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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