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음날 Apr 07. 2023

갈망이 남긴 것이 허울뿐이더라도.

내 집 마련을 한다는 게 참.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꼭 내 아파트를 살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선배는 코웃음을 쳤다.


"야. 현실적인 꿈을 꿔야지. 아무리 싼 집이라도 아파트가 뉘 집 개이름이냐?"


"어디에 있는 썩어빠진 아파트라도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사는 게 꿈입니다."


"그래. 잘해봐라."


사실 그 '잘'은 good이 아니라 '자알~'해보라는 비아냥과 조소가 섞여 있었다.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첫 집을 청약할 때 얼마나 많은 혜택이 있는지 모르고 덜컥 집을 사기로 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말이다. 


성급했다. 친구가 살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저층아파트의 바로 옆 아파트가 괜찮아 보였다. 가까이에 지하철이 있다는 것 이외에는 메리트가 딱히 없어 보였지만 그나마 수중에 가진 돈 얼마와 대출을 잘만 활용하면 어떻게든 각이 나올 것 같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주식으로 자금을 날려먹는다던가 하는 등의) 결국에는 계약에 성공한다.


집을 계약했다는 이야기에 뭔가 석연찮고 마뜩잖아하는 선배의 표정이 오버랩되었다. 15층 탑층에 위치한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짜리 집은 입주하자마자 콘센트에서 물이 샜다. 하지만 '내 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집은 고쳐서 살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마치 날 때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새시를 바꾸고 도배, 장판, 화장실, 전등, 페인트칠을 하는데만 적게 잡아도 천 단위가 넘는 금액이 들어갔다. 붙박이장과 냉장고 TV 등의 세간살이를 채워 넣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30년이 넘은 구닥다리 아파트였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첫 아파트였고 세상 어떤 집도 남부러울 게 없었다. 


격세지감이었다. 보증금 1,000만 원을 맞추지 못해 300만 원을 빌려 해가 들어오지 않는 빌라에서 처음 시작했었다. 3층이었는데 일 년 내내 볕이 들어오지 않고 앞집과 하이파이브가 가능했다. 한밤에 들려오는 어느 아녀자의 신음소리와 아랫집 아저씨가 매일 술을 마시고 집안을 부수는 소리, 건넛집 아저씨의 고래고래 지르는 술주정과 노랫가락이 한데 어우러지는 빌라였다. 누군가 계단에 토를 해두기도 하고 조폭 찌끄레기 같은 양반이 담배를 물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는 천국에 조금 더 가까운 주거환경이라 평해도 손색이 없었다.   


8년을 살고 건너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 집에서 걸어서 갈 거리의 결혼식장에서 결혼도 하고 첫아이 돌잔치도 걸어갈 법한 거리에 있는 곳에서 했다. 시장도 걸어가고 1.5km 정도의 마트도 유모차를 끌고 걸어 다녔다. 아득바득 아끼고 모아 2년 만에 대출을 다 갚아버리고 우리 부부는 번아웃에 시달리기도 했다. 너무 지독하게 소비를 아낀 탓에 지쳐버리고 만 것이다. 


집에 대한 지나친 갈망이었을까. 아니면 서른 이전에 집을 사겠다고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한 알량한 자존심이었을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아파트를 구매하고 상당히 높은 이자를 내며 은행의 노예로 살았었다. (구매 며칠 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며 금리가 5%대로 치솟았다.)

그래도 어쩌랴. 


'허울뿐인 집 한 채가 남아있을 뿐인데 그게 참 좋더라.'


* 화장실이 새서 공사를 해줬고 어제 온 비로 베란다 우수관과 벽체에서 물이 샌다고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가장 작은 단위의 정체성을 획득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