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음날 Apr 19. 2023

정의는 혼낼 수 없다.

세상 살면서 가장 만나기 싫은 유형의 사람이 누구인가? 살인자? 사이코패스? 범죄자? 이런 흉악범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을 가장한 '일반적인'사람의 유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해온 생각의 한 조각이지만 살면서 가장 떨쳐내고 싶은 인연을 꼽자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자신이 정의 그 자체인 사람'


마이크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몸소 깨우친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비꼼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곧 신념이며 세상의 중심이요 원칙이며 정의의 기원이다. 본인의 말과 행동에는 한치의 어긋남이나 이론적 하자가 없다. 잘못되어도 합당하다 말하고, 분명한 실수에도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원히 이유를 말하진 못한다.) 그는 어찌 보면 권능이 없다 뿐이지 이미 반쯤 신의 영역에 들어간 듯 행세한다. 나는 그 사람이 왜 아직도 어느 종교단체의 교주가 되지 못했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정의는 징벌하지 못한다.'


다수가 규정한 악은 언젠가는 제제가 가능해진다. 아쉽게도 이번 세대는 아닐지 몰라도 다다음 세대라도 누적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공적이든 사적이든(사적제제는 신속함이 장점이지.) 제제는 이루어 지고야 만다. 하지만 정의가 문제다. 절대다수가 아닌 소수의 정의라도 정의라고 믿는 집단속에 있는 한 그 사실은 정의로운 일 정의로운 사상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대중의 보편적인 시각에서 악으로 규정될지라도 소수의 정의에 의해 징벌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착각을 동반한다. 자신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옳다는 확신으로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는 곧 신념으로 승화하고 승화된 신념은 인이 박혀버리고 정신은 오로지 그 신념을 축으로 움직인다. 

어떠한 대화도 협상도 그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악은 처단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의는 말리지 못한다. 짱구만 못 말리는 게 아니다. 인간은 수만 년째 거의 그대로다 다만 정보의 이동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므로 건강해졌고 잘 먹고 잘살고 잘 고치고 수명이 늘어났다.

그러므로 인해 너무나 많은 나름의 정의가 생겨났다. 각자 너무 옳기만 한 세상이 와버렸다.

 

'사상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도피하는데 사상만큼 편리한 건 없다. 가난도 청빈으로 포장할 수 있고 게으름도 유유자적으로 칭송할 수 있다. 혼자만 정의로운 괴물을 멀리하자. 그의 정의는 오래전 작동을 멈추었다. 작동하지 않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루틴을 가진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