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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23. 2023

식당에서 만난 이물질의 역사

반갑지 않아.

나는 시력이 가히 좋지 못하다. 꽤나 오랫동안 안경을 써왔고 앞으로도 라식을 받을 생각은 없다. 워낙에 쫄보라. 안경을 쓰지 않으면 대부분 사물의 식별이 어려우니 집안에서는 대충 살아도 외출할 때 안경을 안 쓰고 나가는 법이 없다. 이토록 시력이 나쁜 편임에도 희한하게 음식 안의 이물질은 대단히 잘 찾아내는 편이다. 


예민한 편에 속하는 사람인지라 먹는 것에 까다로운 편이다. 잡내가 나거나 상한 기운이 감돈다면 그 즉시 접시를 멀리 밀어낸다. 강원도의 한 식당에서는 미묘하게 상해 가는 죽을 발견 해 점주에게 일러주었다. 어딜 가든 김치 군내가 나거나 고깃집에서 고기를 살 때도 미묘하게 상태가 안 좋은 것들은 잘 걸러내는 편이다. 사실 어릴 적의 가난도 이러한 능력(?)에 한 몫했다. 상한 음식과 오래된 음식을 많이 접해본 터라 그 특유의 경계를 남들보다 넓게 캐치해 내는 것이다. 가령 상했다는 수치를 10으로 보았을 때 남들은 6~7 사이가 상했다고 판명할 수 있겠으나 나는 4~6 사이만 와도 상할 낌새를 알아채는 것이다. 음식마다 상하기 직전의 향이 각기 다르다.


받아 든 식기에서 발견해 낸 '생물'도 다양하다. 바퀴벌레는 예사이고 모기나 자잘한 날파리와 대왕 똥파리 그리고 압권은 잠자리였다. 순댓국에 '두웅' 떠있는 잠자리는 여기가 잠시 멀티버스 속의 다른 세상을 온건 아닌가 하는 기시감이 들게 했다. 현실적이지 않았다. 주인을 불러 잠자리가 있다고 했더니 주인장도 초점을 잃어버린 눈빛으로 연발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음식값은 받으셨다. 잠자리탕을 맛본 이후 그 식당은 당연히 들릴 수가 없게 되었다. (동네 유일의 순댓국집인데 말이다.)


유명 칼국수 집에서는 국수가락 대신 기다란 볏짚이 나와 매니저 분께 말씀드렸더니 식사권을 무료로 주었다. 워낙에 유명한 집이라 이미 선불을 내고 앉았으니 다음 식사를 할 수 있는 쿠폰을 내어준 것이다.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국숫집은 위생 불량으로 매스컴에 크게 오르내리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결을 신경 쓰고 정상 궤도에 올랐으나 이상하게 맛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치에 쓰인 마늘의 수입처를 바꾸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위생문제와 마늘의 상관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어제는 어느 돈가스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장국을 의심 없이 한 모금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장국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냄새를 맡아보니 상했다. 바로 미식한 느낌이 들고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직원을 불러 장국의 상태가 이상하다 이야기했더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바로 즉답이 나왔다. 


"오늘 끓인 건데요?"


그릇을 쳐다보지도 않고 냄새도 맡아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기계적인 답변이었다. 나는 장국이 상했다는 것을 전달했지 오늘 끓였는지 여부를 물어보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직원의 대답에 나는 인내의 끈을 놓아버렸다. 사실 자리에 앉자마자 마음에 안 들었던 구석이 있었다. 작은 종지의 깍두기를 언제 퍼 두었는지 쪼글쪼글하게 깍두기의 표면이 말라 있는 채 서빙이 되어 나온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국에 어려운 상권에서 고군분투하는 자영업자의 마음을 알기에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한쪽으로 밀어둔 상황이었다. 그깟 깍두기를 퍼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길래 미리 퍼두는가. 말라비틀어진 무의 표면이 식욕을 달아나게 했다.


그 와중에 완전히 상한 장국을 한 모금 마셨고 상태를 확인하라는 요청에 직원은 시큰둥하게 대응한 것이다. 그릇을 가져다 냄새를 맡아보기라도 했어야 했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장국용 보온통(전기온수기)을 비워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사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사장은 내가 쓴 '상한 장국'이라는 표현이 맘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요식업에 몸담아본 경험을 기반으로 장국이 상한 경로를 유추해 보자면 이렇다. 


- 장국 농축액을 냉장보관 하지 않은 채 아침에 끓였다. 상한 농축액을 끓여봐야 상한 장국이 된다.

- 전기온수기를 장국통으로 사용하던데 그것은 엄연한 위생법위반이다. 꼭지 부분을 매일 세척할 수 없다. 전기온수기는 온수만 데워야 한다. 

- 전날 전기온수기의 장국을 그대로 방치한 경우 요즘 같은 날씨에는 밤사이 상해버린다. 


상한 장국을 마시고 몸도 마음도 상해버렸다. 오랜만에 음식점에서 테러를 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벌레를 발견하는 건 양반이었다. 적어도 그 즉시 먹는 걸 중단하거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식당을 나서기 때문이다. 사실 국밥집에서 어지간한 날파리 정도는 걷어내고 먹는 편이다. 비위가 좋지는 않아도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기는 정도다. 이번에는 달랐다. 의심 없이 벌컥 마셔버린 장국 때문에 그간의 함정들을 잘 피해 오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뭔가에 당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이지만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었다.)


앞으로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만약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온다면 병원에 갈 것이라는 언질을 해두었다. 다행히 주말사이 속이 안 좋다거나 몸에 가려운 뭔가가 올라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내일은 전화상으로라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한다. 괜한 불안감에 시달릴 점주의 마음을 조금은 해소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통해 뭔가를 배우지 못한다면 결국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된다. 자영업자에게 주어지는 성적표는 때론 그 과정에 비해 과도하게 잔혹한 경우가 많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 속에 사람으로 인해 아픔을 겪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 또한 문제이다. 굳이 상처를 소금으로 문지를 필요가 있겠는가.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어볼 수 밖에는 없다. 


당분간 식당을 다닐 때 예민해질 것 같다. 


말라버린 깍두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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