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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ug 02. 2023

당하는 자의 태도

이사를 하려다 보니 집에 수리를 해야 할 부분이 생겼다. ㅇㅇ를 통해 몰딩 한쪽을 교체해 주고 문짝을 달아줄 업자를 구하게 되었다.


ㅇㅇ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친절한 메시지가 왔고 호감 가득한 문자에 나는 그와의 미팅을 잡았다. '청년'이라는 상호는 믿고 거르라는 인터넷상의 흔한 말이 왜 이제야 생각났는지는 모를 일이다.


상당히 젊은 나이에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고 문의 컬러와 손잡이를 꼼꼼하게 골라주는 모습까지는 좋았다.

막상 시공을 하러 왔을 때부터 뭔가 불안하다 싶은 나의 예감은 적중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 젊은 친구는 나보다 문짝을 달 줄 모르는 쌩초보였다.

- 문짝 하나를 다는데 총 5시간이 소요되었고 몰딩은 그 청년의 아버지가 와서 해주셨다.

- 청년과 청년의 누나까지 2인이 와서 문짝 하나를 5시간째 달고 있었다.

- 문짝의 경첩이 달릴 홈을 3개 파는데 현장에서 5만 원을 요구했다.

- 문은 앞뒤로도 유격이 안 맞았고 상하로도 단차가 난 상태로 다 되었다며 보여주었다. 무려 5시간 만에 말이다.


너무나 황당하게도 그는 경첩을 제대로 달 줄도 모르고 문짝 시공이 아닌 인테리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문의 상, 하단의 유격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 부분이 삐딱하니 양해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전후의 유격이 다른데 경첩문제가 이러저러하고 기술을 배우지 못해 문짝의 홈을 파지 못하니 양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짝 홈을 파는 기술을 배우지 못해서 그라인더로 1자로 밀어버려야 하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기술은 없고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뻔뻔한 말주변만 있었다.


플라스틱 조각을 양면테이프로 붙이든지 해서 상단의 유격을 어느 정도 해결해서 수평을 맞추라는 솔루션을 거꾸로 제공해줘야 했다.

문의 틈에 있는 인터넷선을 뽑고 작업을 해도 되는데 그대로 두고 문을 여닫아서 선이 찝혀버렸다.

5시간을 뭔가 두드리고 쿵쾅거리고 문짝을 수십 번 복도로 들고 나르니 곳곳에 시트지가 까이고 상처가 생겼다.

경첩은 다른 경첩으로 교체하고 문짝의 홈을 파서 앞뒤의 유격이 없게 작업할 것을 가르쳐야 했다.


"문이 삐딱하게 달리는 걸 뭘 양해해서 해결할 문제냐?"

"사장님이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지 않고 와서 우리 집을 연습장으로 쓰고 있는데 왜 계속 양해해 달라고 하냐."

"사람 2명이 와서 5시간 동안 문짝 하나를 못 달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


-부글부글-


그나마 적반하장식으로 나오지 않아서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가르쳐가며 문짝을 달게 했다.


- 기술은 없고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때우려는 모습이 끝없이 보였다.

- 하지만 어쨌든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 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완료는 하고 갔다.


나는 잔금에 25,000원을 더 얹어 입금버튼을 눌렀다.

이는 나를 돋보이게 하거나 자화자찬하기 위함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나는 5시간 동안 문짝 하나를 제대로 달지 못하고 씨름하는 그 청년의 모습에 매우 짜증이 난 상황이었다.

제대로 기술을 배우지도 않고 와서는 변명과 임기응변으로 시공하려는 태도 또한 매우 못마땅했다.

사실 이리저리 꼬투리를 잡아 비용을 전혀 주지 않거나 깎아도 전혀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 청년을 붙잡고 설교를 늘어놓자면 1시간이라도 부족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의 결과물과는 무관하게 5시간 동안 고생했으니 음료수 값이라도 더 얹어 준 것이다.

짜증 나고 억울한 이 상황을 더 이상 확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 청년을 붙잡고 삶에 도움이 될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봤다.

오히려 나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그 친구를 불러다가 화풀이를 하는 감정적 소모만 겪게 될 것이 눈에 선했다.


나는 물건값을 깎음으로 인해 이득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역행했다.

잔소리를 하고 그를 응징하거나 혼내어 마음에 흠집을 내고 싶은 마음을 접고 참았다.

오히려 용돈을 주어 그 청년에게 조금이나마 긍정의 기운을 전달했다.


그 청년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대꾸가 없다.

이에 대한 기대조차 전혀 하지를 않았다.


나는 손해를 부르는 못마땅한 상황에 쳐해 졌지만 그 상황을 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내 안에 남은 분노를 없애기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수밖에는 없다.

만약 망나니 같은 작자가 그 따위로 문짝을 달고 책임지지 않았다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큰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ㅇㅇ는 믿을만한 곳이 아니라는 선입견이 하나 더 덫씌워졋다.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길은

타인을 구하려고 애쓰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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