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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ug 04. 2023

부여받지 못한 것

유년 시절의 기억이 출발하는 시점, 나는 지방 어느 도시의 가정 법원 앞이었다. 

처음 보는 아줌마가 엄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내 기억의 첫걸음이다. 

유아기억상실은 행복했을 기억은 쏙 빼고 가장 비극적인 컷들만 나에게 남겨주었다. 


그 후로 지옥이 펼쳐졌다. 

아버지는 매일 술에 만취해 집안의 모든 것을 마당 위로 쏟아내고 마음껏 파괴의 욕구를 발산했다. 

괴성을 지르며 낮에 해놓은 좋은 것들을 밤에 해치우는 것이다. 


내 기억은 과격한 것들로만 채워지기 일쑤였다. 

똥통에 빠진 일, 구렁이가 푸세식 화장실에서 기어 나온 일, 발가벗고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닌 일

공부하겠다고 던져져 죽을 뻔한 일, 귀싸대기 맞고 방에 숨었던 일, 길도 없는 개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집을 찾아가지 못한 일

공포로 점철된 그 기억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지옥에서 벗어보고픈 열망은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스스로를 내몰기 마련이다. 


지옥에서 벗어나봐야 바로 옆동네 지옥이란 걸 몰랐다. 

그렇게 무한 도망, 가출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괜찮은 환경 속에 태어나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보통의 인간'으로 자라나게 하는지에 대한 고찰은 마흔이 넘어간 지금에야 추스려 생각해 볼 겨를이 생겼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 내 부모처럼 살지 않으리."


절대적인 열망은 아집과 집착이 되었고 천성을 억누르고 인생을 자꾸만 헛된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잘 곳이 없으니 거처를 스스로 마련하고 먹고사는 것에 모든 열망이 소모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지치게 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정신력으로 상황을 타개하려는 습관이 몸에 베이게 되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불안정한 환경은 인간을 비루하게 만든다. 


나는 부모로부터 신체와 생명 말고는 부여받은 것이 전혀 없다. 

이것도 유산이라면 감사한 유산이지만 사실 감사의 주체가 사라진 지금은 그 감사가 어디를 향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 안의 유산은 그럼 누구의 것인가?

어디서 말미암아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단 말인가. 

6살 이후 혼자 이 집 저 집 고아원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살았으니 오롯이 내 탓이기만 한 걸까. 

나는 원망의 세월을 보내느라 아무것도 집중하거나 몰입하지 못했다. 

머릿속은 늘 분주하게 과거를 생각하고 다른 저주의 대상을 물색하느라 혼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잡다하고 저주스러우며 부정적인 생각이라도 했기에 목숨을 부지하고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안의 사슬은 어쨌든 나를 세상에 묶어 두었다. 

그것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지만 나 스스로 나를 해치는 것까지도 허락하지 않았다. 


뛰어난 정신력이 있다면 가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지만 가난은 개인의 모든 잠재력을 잠식할 수 있는 거대한 무엇이다.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괜찮은 dna를 가진 것에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진정한 행운아다. 자신도 모르는 극복의 인자를 본인이 알지 못하는 것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받은 유산이 아무것도 없다. 

분노와 증오, 원망과 짜증만을 받았다. 

그것들과 사투를 벌이다가 젊고 생기 넘치는 시절을 다 보내버렸다. 

지금은 그 싸움의 흔적들을 정리하고 내다 버리는 중이다. 

과거를 잊고 지금 이렇게라도 살아감에 무한히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의 자녀들에게 지옥을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하루 3끼 먹이고 건강을 관리해 주고 두어 달에 한번 집안 기둥에 키를 재어준다. 

몸무게와 피부건강을 신경 쓰고 산수와 한글을 가르친다. 

매번 식사 시간에 감사의 인사를 하라고 일러준다.

새 신발을 사주고 괜찮은 브랜드의 옷을 사준다. 태권도 학원을 보낸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뽀뽀해 주고 안아준다.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뜻한 바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르치는 중이다. 

나는 내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들을 주며 2배로 살아가고 10배로 보상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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