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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ug 04. 2023

복잡한 내면과의 조우

글쓰기는 나와의 미팅이다. 

나는 나와 매일 함께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 그것은 나와는 별개인 듯 행동한다. 동상이몽이다. 


뇌라는 놈은 참 미묘한 녀석이다.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신체의 거의 모든 것을 관장하면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리고 소멸까지 함께한다. 


그런데 '내 편'이 아니다.


이 녀석은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다. 

우선 뇌는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을 양산해 낸다. 

한번 주르륵 나열해 보라. 


우울

기쁨

슬픔

비교

갈망

집착

고집

사랑

미움

감사

저주


수많은 감정들을 장마철 계곡의 굽이쳐 흐르는 진흙탕 저럼 매일 쏟아내는 것이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되기도 하고 쓰레기차가 되어 가는 곳마다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돈, 인간관계를 통해 발현되는 감정의 굴곡들은 인간을 번뇌의 계곡에 던져두기도 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런 나의 내면과 한 번쯤 미팅을 해야 한다. 

이러한 '만남의 성사'는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을 내포한다. 


그것은 나와 나의 뇌를 별도의 객체로 인식하고 떼어내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뭔~~~ 개소리야!"


당신의 뇌는 당신이면서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글을 읽고 침을 삼키고 호흡을 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것들은 뇌가 하는 일이지만 뇌 스스로도 그것을 자신의 일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행한다. 

의식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생각은 어떠한가? 과연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만한 활동을 얼마나 할까?

당신의 비협조적인 뇌는 당신과 합작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물아일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이 말이 있다는 뜻은 원래부터가 육신과 정신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관은 충분하지만 객관은 부족하다.

당신의 뇌를 객관화해서 하나의 유체로 당신 앞에 마주 서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글쓰기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것은 일종의 유체이탈이다. 

내 머릿속의 물렁한 뇌의 영혼을 쏙 뽑아내어 내 앞에 둥그런 말풍선처럼 띄워두는 것이다. 


'커피 한잔 할래?'

'나는 지금 이걸 원해. 너는 그게 싫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너의 오래된 습관이지 지금 현시점에 나에게 필요한 건 아니야.'

'양보하고 이번만큼은 내 말에 좀 따라줬으면 좋겠어.'

'기억하기 싫겠지만 기억해.'


"오늘 이 미팅은 내가 어딘가에 다 적어 놓을 거야. 그러니 나중에 신기한 척, 처음 보는 척하지 말고 인정하길 바라."


'알겠니?'


글쓰기는 지문이며 일종의 증거이다. 

우리 뇌가 온몸을 쥐어짜 증언을 거부할 때 내밀어야 할 증거물 제1호이다. 


'이런 글을 내가 언제 썼지?'

할 때 들이밀면 너무나 좋을 증거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의 만남이다. 

브런치에 쌓여 있는 글들을 훗날 읽게 된다면 그것은 나와의 미팅일지를 들춰보는 일이다.


당신과 자주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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