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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ug 05. 2023

수건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비밀

수건.


맞다. 


당신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몸을 닦는 널따란 천 조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거 아는가?

수건만큼 당신의 몸 구석구석을 매일매일 훑고 다니는 물건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속옷, 양말, 상의, 하의, 모자, 신발, 또 무엇이 있는가?

각각의 아이템들은 신체의 일부분만을 가려주고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해당 '그 부위'만을 케어한다. 


하지만 수건은 장착하지 않는 대신 당신의 몸을 골고루 훑어내고 수분을 옮겨오는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샤워 혹은 세안 후 깨끗한 피부에 가장 먼저 닿는 물건은 수건이다. 

머리 몸 다리 각자의 은밀한 부위까지 골고루 닿는 물건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수건뿐이다. 


이상하다.


세상에 유용한 물건들은 죄다 형태가 변했다. 

트랜스포머가 세상에 잠입한 게 틀림없다. 

빗자루는 정말 변신로봇처럼 무선 청소기와 로봇 청소기로 변했다. 

그것들은 내가 안보는 사이에 분명 합체해서 외계인과 싸울 것처럼 생겼다. 

빨래판은 세탁기로 변했고 빨랫줄은 건조기로 변했다. 

인두는 다리미로 변했고 편지는 이메일로 변했다. 

화로는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오븐, 밥솥으로 변했다. 

부채는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변했고 마차는 자동차가 되었다. 


이상하다. 


수건은 인류가 면을 뽑고 직조를 하고 난 이후 단 한 번도 그 형태를 바꾸지 않았다. 

이는 마치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와 같다. 혹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정도의 본능에 가까운 원시성과도 흡사할 정도이다. 신발이 그렇고 의복이 그러하다. 모자가 그러하고 그릇이 그러하다. 

본질이 형태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어 더 이상의 진화나 변신이 무의미한 것이다. 

어찌 놓고 보면 이러한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태어나서이다. 


첫 번째 비밀

우리 몸을 완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물건은 수건뿐이다.

두 번째 비밀

수건은 태어나고 나서 한 번도 그 형태와 모양에 큰 변화가 없다. 


우리가 같은 사이즈의 수저를 쓰듯 수건도 비숫한 사이즈의 수건을 쓴다. 

키가 190cm인 장정도 140cm인 어린이도 1장 혹은 2장의 수건을 쓴다. 

최홍만 선수에게 500ml 우유가 한 모금밖에 안 되듯 수건도 머리 한번 털면 용도가 다해버리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문제라 인식하지 않고 '원래 그런 것'으로 인식하고 만다는 것이다. 

불편을 느끼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큰 문제를 초래한다. 


수건이 변화할 수 있는 여지는 크기와 두께, 재질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의 인식 이 4가지이다. 


우선은 작다. 

그리고 얇다. 

재질은 인식과 가장 밀접하지만 수건은 통상 1년이 지나면 수명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 

더 이상 수건으로써의 기능을 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보통 10년이 넘은 수건 한두 개쯤은 그냥 쓴다. 


인식의 문제는 사실 상식의 문제이다. 

수건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수건은 수명이 1년 내외이다. 

(흡수력이 70% 이하로 떨어지면 기능이 없어진 것이고 1년이 지나면 항균력이 사라져 세균의 증식이 쉽다.)

2. 수건은 수건만 따로 세탁해야 하고 중성세제를 조금만 넣어야 한다. 

3. 수건을 망가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섬유유연제를 사용한다는데 있다. 

(의외로 섬유유연제를 수건에 사용하는 세대가 참 많다. 섬유유연제는 모든 수건 제조사마다 사용하지 말 것을 크게 당부한다. 수건의 생명인 흡수력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4. 햇볕에 바싹 말리지 말아야 한다. 

(햇볕에 굽듯이 말리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과거 못살던 때 일광소독을 하던 때나 통용되는 일이다. 수건을 볕에 바싹 말리게 되면 올이 상하고 피부건강에 좋지 않다.)

5. 건조기 혹은 통풍이 잘되는 시원한 곳에서 말려야 한다. 


생활의 방식과도 밀접하다. 

하루에 2번 머리를 감는 사람도 있고 이틀에 한번 머리를 감는 사람도 있다. 

(땀이 나지 않으면 이틀에 한번 감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매일 샤워를 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건조기가 없거나 마땅히 수건을 말릴 수 없는 공간에 사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얇고 잘 마르는 수건을 써야 한다. 


수건으로 몸을 벅벅 문지르며 물기를 닦아내는 방식은 피부를 상하게 한다. 

찍어내듯 톡톡~ 물기를 흡수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이야기할 때면 몰랐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처음 들어봤어요."


나도 그렇다. 

사실 1년에 한 번 수건을 모조리 교체한다는 것은 우리네 정서상 너무나 맞지 않는다. 

수건이 죽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써야 하는 게 우리네 정서와 부합한단 말인가?


결혼식, 돌잔치와 회갑, 체육대회, 개업식등에 나눠주기 좋은 수건은 그 크기와 품질에서 당연히 좋을 수가 없다. 

나쁘지도 않지만 결코 나에게 맞거나 좋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뿌려야 하는 판촉물로 태어난 수건이 좋을 수가 있단 말인가?'


세 번째 비밀

나에게 맞는 사이즈와 재질의 수건을 골라야 한다. 

네 번째 비밀

수건은 1년만 쓰고 버려야 한다. 슬프게도 말이다. 


1년만 쓰고 버린다는 것에 대단히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겉보기에 너무나 멀쩡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건에 돈을 쓴다는 것도 영 마뜩잖을 수 있다. 

장롱 깊숙이 쌓여있는 새 수건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깝고 안타까운 것은 불편을 모르고 견디며 사용하느라 지쳐가는 당신의 피부이다. 


우리는 내 몸에 좋을 것을 쓸 권리와 안목이 있다. 

편리를 찾아 모든 것을 바꾸면서 왜 수건은 2,000년째 그대로인지 모를 일이다. 


수건에 대한 비밀을 4개나 알아버렸으니 이제 당신의 집에 걸린 수건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왜 이렇게 잘 아냐고? 나는 수건을 제작해 파는 일을 하기도 한다.)



한국은 수건을 한 가지 형태로만 쓴다. 

몸을 닦아내는 전천후의 용도이다. 

서구권에서는 세안, 핸드, 샤워, 욕조 등 그 크기와 용도가 무척이나 다양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그러한 형태로 슬슬 움직이려 하고 있다. 

한 가지 모양의 수건 한 장으로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형태에서 점점 사용 용도에 맞는 형태의 다양한 수건을 쓰려하는 것이다. 


행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 땅에도 분명 그런 시기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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