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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ug 09. 2023

냉장고를 파먹다가 배달어플을 삭제했다.

요리는 쉽다. 

"어떤 것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때려 넣었어."


이런 류의 맥락을 음식으로 고스란히 가져오자면 피자나 햄버거, 샌드위치, 비빔밥, 타코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사실 위의 음식들은 경우의 수에 따라 무한 증식이 가능한 음식이다. 파인애플 피자, 아보카도 비빔밥, 밥버거, 베이글 샌드위치 등이 있겠고 타코류의 음식도 끝판왕에 해당하지 않을까? 

"타코는 내가 볼 때 거의 접시 수준이야.

어떤 음식을 올려도 타코라고 부를 수 있잖아.

그러면서 그는 겨드랑이에 타코를 끼워 넣으며 헤까닥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작자 나-



갑자기 무슨 경우의 수와 겨드랑이 이야기를 하느냐고?

냉장고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사방팔방 튀어버렸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냉장고야? 요리야? 배달어플이야?


"냉장고를 쌈 싸 먹을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야기가 이 지경이 된 거야."

"냉장고는 왜 먹어."

"그리고 배달 음식이야기 하려던 거 아니었어?"

"배달 어플은 무슨 죄람?"

"그것은 원죄... 랄까?"

"응? 원죄?"


"일단 들어봐."


'끄덕'

(불신팽배)


약을 팔려거든 약장수의 목소리 톤이 좋아야 한다. 

이것을 두고 어쩌면 '기본기'라고 하지 않는가. 

끌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듯 사기도 목소리가 좋은 사기꾼이 타율이 높은 편이다. 

(좋은 걸 가르친다.)


나는 종국에는 배달어플을 지우고 배민과 요기요의 성장률을 저해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냉장고 파먹는 이야기만 하다가 흐지부지하며 글을 마칠 생각이다. 

괜한 잡음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니 말이다. 


배달 어플을 지울 용기에는 요리에 대한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없어도 충분히 지울 수는 있지만 얼마 못 가 다시 배달음식의 전능함을 깨닫고 회귀하기 때문이다. 

잦은 탈옥 시도는 결국 무기 징역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자발적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옥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듯 배달 어플을 지우기 위해서는 요리에 대한 기본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 


그 요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라는 것은 침대처럼 과학은 아니니 안심하시라. 

사실 요리를 전공으로 하거나 씨아이에이(특수임무 CIA가 아님)에 입학해서 물리법칙까지 탐독하며 요리를 업으로 삼을게 아니라면 가볍게 듣고 '그렇구나'하고 넘기면 될 이야기이다. 


정보라기 보단 '잡담'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자.

냉장고를 잘 파먹기 위한 기본기란 다음과 같다. 

1. 냉동고의 활용이 관건이다. 

냉동 닭가슴살, 너비아니, 만두, 냉동새우, 냉동동그랑땡, 핫도그, 생선, 한우국거리, 목살, 냉동야채, 떡 등등등 냉동고는 전략적 식량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 교두보이다. (비장)

냉장고를 파먹는다는 말의 어원은 사실상 냉동고의 깊숙이 자리한 화석연료를 채취해 요리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냉동 식재료는 냉동인 채로 요리하는 재료와 해동한 후 요리에 투입해야 하는 재료로 나뉜다. 

냉동고를 잘 활용해야 장을 보러 가는 번거로움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다양한 요리 재료의 확보와 범용을 통해 요리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냉동고를 잘 활용하자는 이야기이다. 


2. 부지런해야 신선함을 누릴 수 있다. 

생생한 파, 청양고추, 오이, 다진 마늘등의 신선함을 누리는 시간은 길지 않다. 

바쁜 일상에 치여 냉장고에서 썩어나갈게 뻔하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빠르게 손질하여 냉동실로 넣는 게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 파 한 단은 깨끗이 씻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물기를 빼어 말린다. 

물기가 없는 파를 얇게 썰어 소쿠리에 담아 한두 시간 정도 뒤집어 가며 말린다. 수분이 없어야 달라붙지 않는다. 잠금기능이 있는 봉투나 투명 비닐봉지에 담아 냉동보관 하면 언제든 편하게 쓸 수 있다. 

- 라면 끓일 때나 국, 무침등에 써도 손색이 없다. 

- 양파는 잘 씻고 뿌리와 지저분한 껍질 부분을 손질해 물기를 없앤다. 

랩에 싸서 냉장실에 넣어두면 최소 2주 이상 버틴다. 너무 오래되었다 싶으면 볶음밥 용도로 썰어 지퍼락에 담아 냉동실에 얼린다. 

- 다진 마늘은 실리콘 트레이에 넣어서 쓸 만큼만 한알씩 빼서 쓰자. 

파, 마늘, 양파 정도만 관리해도 어지간한 요리에는 다 쓸 수 있다. 


3. 제철 청과가 최고다. 

수입산 과일은 열대과일인 경우가 많아서 금방 상하기 일쑤이다. 

냉장고와 친하지 않을뿐더러 대부분이 배안에서 후숙처리 후 운반되기에 당도도 낮고 건강에 득이 되지 못한다. 비싼 수입과일보다는 우리 땅에서 나 이송거리가 짧은 제철과일이 가장 합리적이다. 

야채와 나물류로 직접 뭔가를 요리하기에는 번거로움이 많다. 

반찬가게에서 먹을 만큼만 사거나 구내식당, 백반집을 이용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며 노동력의 소모가 적다. 


4. 간단한 요리를 많이 아는 게 좋다. 

정말 간단하고 손쉬우며 비슷한 요리를 20개 알면 복잡한 요리를 10개 아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요리는 필연적으로 늘기 마련이다. 


5. 육수 내는데 큰 힘을 들이지 말자. 

다랑어포, 동태머리, 다시마, 육수팩 같은 거 사지 말고 한알 육수 혹은 다시다를 쓰자. 

깊은 맛은 손맛보다 대기업에서 더 잘 낸다. 

국시장국 같은 제품으로 계란찜을 하는 게 훨씬 간단하고 맛도 좋다. 


6. 자신 없으면 볶아라. 

볶음의 준비단계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것은 재료 준비는 100% 완료해 두고 불을 켜야 한다. 

소스도 다 꺼내놔야 한다. 

요리 초보라면 강불은 절대 안 된다. 중불이나 약불에서 볶는 것부터 시작하라. 


- 중불로 천천히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른다. 

냉동 파와 마늘을 아주 조금 넣고 살살 볶는다. 

기름이 향긋해지면 계란 한 알을 깨 넣는다. 

스크램블처럼 휘휘 저어서 익히고 햇반이나 밥을 한 공기 넣는다. 

소금 약간과 굴소스 혹은 간장도 무방하다. 미원 한 꼬집도 살짝 넣어주면 좋다. 

참기름이나 버터를 조금 첨가해도 된다. 

이러면 계란 볶음밥이다.

어때요? 참 쉽지 않은가?


7. 국은 한 종류 씩만 릴레이 하듯 끓여야 한다. 

물리거나 오래된 국은 바로바로 버려야 한다. 

미역국, 콩나물국, 된장국 이 3가지 국만 끓여도 된다. 

이외의 국이나 찌개는 밀키트의 힘을 빌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미역을 불린 후 물기를 짜둔다. 

비닐에 둔 냉동 국거리를 그릇에 담아 전날 냉장에 둔다. 

약불에 달군 냄비에 참기름을 붓고 국거리 고기를 살살 볶는다. 

마늘도 넣어 함께 볶아 준다.

핏기가 어느 정도 사라지면 불린 미역을 꾹 짜 냄비에 넣고 강불로 볶는다. 

살짝 미역이 녹색으로 되며 약간 볶아졌다 싶으면 물을 넣는다. 

보글보글 끓으면 액젓 아주 조금, 국간장 조금, 소금으로 간한다. 

한소끔 파르르 끓인 후 통에 담아 식힌 후 냉장 보관한다. 

끼니때마다 국그릇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맛있게 먹는다. 


- 콩나물국이 가성비는 최고다. 

쿠팡에서 1KG 콩나물을 한봉 산다. 3,000원이 채 안된다. 

큰 솥에 물을 1/3쯤 넣고 끓어오르면 씻어둔 콩나물을 넣는다. 

뚜껑을 덮고 콩나물 대가리가 익을 때까지 익힌다. 뚜껑을 자주 열면 콩나물이 비려진다. 

(대가리가 익는 시간을 알아내기까지는 맛을 보는 수 밖에는 없다.)

콩나물이 다 익으면 집게로 콩나물의 95%를 큰 볼 2개에 나누어 건져 낸다. 

솥에 있는 콩나물은 콩나물 국 하나는 안 매운 콩나물 하나는 매운 콩나물로 무친다. 

다진 파, 다진 마늘, 국간장, 소금으로 간한다. 매운 건 고춧가루만 추가하면 된다. 

맛은 점점 다듬어 가면 된다. 

콩나물국은 새우젓, 국간장, 소금으로 간한다. 국간장은 많이 넣으면 색이 변하니 조금만 넣자. 

다진파와 다진 마늘 넣고 한 소금 끓인 후 식혀서 냉장고에 두면 냉국이 되기도 하고 전자레인지에 데워 따뜻하게 먹어도 된다. 


8. 못하는 음식은 가급적 포장으로 하자. 

특히 치킨, 피자, 족발, 햄버거 등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그런 건 어지간히 바쁘지 않다면 포장해 와서 먹자. 운동도 되고 빈도도 줄어들게 된다. 가계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9. 냉동 닭가슴살은 최고의 식재료 중 하나이다. 


- 2~3 덩이의 닭가슴살을 전날 그릇에 담아 해동해 둔다. 

우선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인다. 

불을 끄고 후추 몇 알과 맛술을 한 큰 술 넣는다. 

해동된 닭가슴살을 풍덩 빠뜨리고 30분 기다린다. (알람을 맞춰두고 딴짓을 하자.)

정말 촉촉하고 맛있는 수비드 닭가슴살이 되어있다. 

찢어서 1인 레토르트 곰탕 국물에 넣고 데우면 고급진 닭곰탕이 된다. 

파 살짝 올리거나 불린 당면을 넣어 끓이면 식당에 온 기분이다. 


- 냉장실에 넣어두면 딱딱하게 굳어서 잘 썰린다. 

얇게 썰어 샐러드에 올려먹으면 닭가슴살 샐러드가 된다. 

찢어서 보관해도 된다. 


10. 냉장고를 가득 채우지 말자. 

수시로 냉장고를 정리하고 비워야 한다. 썩을 것 같으면 미리 버리거나 썰어서 냉동해야 한다. 

냉동실에 오래된 음식은 수시로 버려야 한다. 

언젠가 먹을 것이라는 기대는 냉동실의 공간만 사라지게 할 뿐이다. 


사실 10개가 아닌 100개의 항목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배달 어플을 지우기 위한 노력에 요리실력까지 더해진다면 허들이 높아지는 건 어쩔 수없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지 않은가. 요리를 잘하는 건 현대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굉장히 요긴한 능력치가 되기도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고 요리실력도 느는 1석 3조의 (개이득) 찬스에 뛰어들길 바란다.

그러려면 배달 어플부터 지우고 요리를 해보자. 

유튜브와 블로그에는 수천만 가지의 레시피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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