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확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타인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들을 하며 인간은 스스로 오류에 빠지는 우를 범한다.
그로 인해 실망, 분노, 기대, 좌절, 갈등, 미움의 감정적 고난들을 생성해 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부적절한 기대로부터 출발한다.
배우자, 자녀, 부모, 친구, 지인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기란 어렵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혈육에 대한 기대는 그러한 기대가 마치 한 몸처럼 내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어 알아차리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러한 기대를 없애는 것은 한쪽이 죽는다 해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기대를 선택한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 절대적인 염원은 자신이라는 숙주와 함께한다.
기대를 가지려면 자기 스스로에게만 가져야 한다.
인간은 그래서 결국 혼자다. 외로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지구와 그대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배제한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이 세상 즉 실존하는 지구라는 환경 속에 모든 등장인물을 없애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외롭지만 자신과 생활과 벌어지는 일들로만 남아있는 생을 꾸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제 보다 더 나은 나라는 존재는 홀로 서기를 작정한 인간에게는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은 개념적 성장이다. 우리는 비교의 대상이라는 타인이 있기에 나를 성장하는 데 있어 궁극의 목표로 설정했던 것이다. 나에 대한 기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자 생명줄이다.
당연히 세상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바꿔보려는 수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더 이롭게 만들고자 한다는 명분아래 세상을 단지 회전하게끔 굴리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어느 개인의 영향력이 신에 준하는 권능을 가진 사례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아무리 힘을 써도 이 세상을 이념적으로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의지는 자신만의 만족이며 이는 더 나은 세상이 아니라 더 다른 세상을 향해 변해갈 뿐이다. 하지만 이것을 허무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스스로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기대를 가지는 것은 자신에게 가지는 기대로 치환해도 좋다. 홀로 서야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며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반드시 자각해야 한다.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했던 이는 세상을 크게 바꾸거나 많은 인류를 구원에 이르게 한 이가 아니다.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일수록 자신을 가장 크게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그가 바뀌고 행했을 뿐 타인을 바꾼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