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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ug 25. 2023

예민한 인간의 통화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상당히 예민한 편에 속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대체로 느끼는 범위가 타인에 비해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감각의 범위가 타인보다 넓다는 것은 때로는 장점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인생을 좀 살아본 바에 의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때가 많다. 특히나 일상생활에서는 더욱 그러한 점이 도드라진다.

소위 민감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감의 발달 기준이 남들보다 예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맛에 까다롭게 되며 음식에 진심인 편이 된다. 이것은 삶의 질을 상당 부분 높여주기는 하지만 종국에는 여러 가지 피로함을 양산한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소비자의 입장에만 국한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맛난 거 먹으러 여행 다니고 음식도 잘하는 게 부러웠을 입장일 때는 이러한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소음에 민감하면 특정 소리에 짜증스럽게 반응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민감한 감각기관은 결국 예민한 내면을 만든다고 보며 그러한 내면을 가장 잘 헤집어내곤 하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듣기 싫은 소리에 격하게 반응하는 편이며 견딜 수 없는 소음에는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 대상이 누구라도 반드시 가서 의견을 피력하는 편이었다.

한 번은 빨대를 위아래로 휘저으며 플라스틱 커피잔 뚜껑과 빨대의 마찰음에 노이로제가 걸린 적이 있었다.

그 소리가 반복해서 나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장모님께도 한소리 했다가 후폭풍을 감당해야 했다.

어리석었지만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항변만이 가슴속에 메아리쳤다.

청각은 내면과 굉장히 밀접하다. 나는 굉장히 '찰칵' 혹은 '찰박'거리는 소리가 심한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지만 타인이 사용하는 기계식 키보드의 소음은 견디지 못한다. 내로남불이다.


민감하면 몸이 쉬이 피곤해지고 잘 체한다. 신체의 피로가 눈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어 안구 컨디션이 별로인 채로 살아가는 경우가 잦다. 촉각과 후각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지만 이미 맛과 청각 쪽에서 형성된 성격적 구조가 나를 대변하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불편함을 잘 느끼고 자주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요즘 가장 촉각이 곤두서는 주제는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통화의 자세'이다.

태도나 자세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무래도 앉아있는 자세를 고쳐 앉기 마련이다.

주제가 나오기도 전에 작은 경각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전화상으로 타인의 심적 상태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통화는 가장 최악인 것 같다.

어제는 업무상의 일로 TV 한대를 대여할 일이 있었다.

담당자인지 사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작은 일을 의뢰하는 것에 실망한 눈치였다.

목소리에 그의 태도과 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하마터면 나는 그에게 '통화를 왜 그따위로' 하냐고 소리를 지를뻔했다.

1분도 안 되는 통화 시간 동안 그의 목소리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귀찮다는 태도와 무성의한 답변 그리고 예의와 존중의 하한점에 다다른 어떤 특정 구간에 머무른 채 통화를 했다.


그와의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혹여라도 그 처럼 매너 없이 통화를 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자아성찰이었다.

힘없는 목소리에 귀찮은 듯, 메마른 전화 통화를 접하다 보면 현대인이 왜 전화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는지 알 것만 같다.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목소리와 톤을 들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실망스러운 평소의 태도에 무성의하다는 면을 대상에게 들킬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공포에 기인한다고 본다.


나는 이러한 행태에 대한 속내를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내비친 적이 없다.

상당히 오래전, 언제부터 인지 몰라도 나는 타인의 밥줄이나 태도를 가지고 조언이나 피드백을 하는 일 자체를 일절 금하기 때문이다. 단지 잘하고 있다는 칭찬과 긍정의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타인에게 행하는 비난이나 지적은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칭찬도 사실 따지고 보면 마냥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지고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난보다는 훨씬 나은면이 많다. 좋은 말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은 짧다.


예민한 사람은 이런 게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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