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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ug 10. 2023

05. 한 번쯤은 고립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살기 마련이다. 

필연적으로 부모로부터 종속되었고 형제와 친척들 가족구성원의 울타리 안에서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태어나며 그 태생의 고저와 유무와는 별개로 누구나 엄마, 아빠 혹은 정자, 난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나'로 출발이 가능하다. 


인간은 혼자 태어나지만 지구 속 국가라는 울타리 안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떨어진다. 

그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배워나가고 이어나간다. 

치밀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복잡해 보이지만 인간관계는 그 나름대로의 규칙과 정해진 인과에 따라 흘러간다. 이유 없이 인연이 발생하고 만나고 헤어지는 법이 없다. 어딘가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은 건강, 인간관계, 돈으로 부터 발생한다. 

복잡한 인간사에 위의 3가지를 배제하면 크나큰 고민이나 불행도 별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태어남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듯 살아가야 하므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고통과 불행 또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늘 곁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고통의 번뇌 속에서 마치 유행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거나 종교에 의지하곤 한다. 이는 세계적인 불경기와 맞물리기도 하며 한 인간의 쇠함과 함께 하기도 한다. 

건강이 악화되고 돈이 없어지고 불행하고 약해지고 고난이 닥쳐와야 그제야 무엇이 문제인가를 헤집어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러한 고난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참 다행한 일이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개개인마다의 고난이 존재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에 가깝다. 


우주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지구처럼 태양계처럼 우리는 우리가 홀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는 진정으로 나 혼자만의 우주를 느껴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당신은 타의에 의한 고립이 아닌 자발적 고립의 시간이 필요하다. 


알아차리고 멈춘 후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우주에서, 나를 나의 머리 위에서 '관조'하기 위해서는 셀프 고립이 필요하다. 

이 셀프 고립의 시간은 반드시 단기적이어야 하며 길지 않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심연 속으로 빠져들거나 우울의 늪에 익사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허무주의에 빠져 수행자나, 구도자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그 길은 결코 나쁜 길이 아니지만 때때론 좋은 길이 아니기도 하다. 


부모가 나를 괴롭힌다면 부모와 잠시 멀어지라. 

친구가 나를 괴롭게 한다면 잠시 연락을 두절하라. 

직장 상사, 후배, 업무가 견디기 힘들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이직을 하거나 쉬어라. 

나를 괴롭히는 인연과는 과감히 단절하라.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보지 못해도 죽지 않는다. 

인간은 혼자 살아도 충분히 잘 산다. 

우울하지 않을 만큼 바삐 살면 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얼른 자리를 옮겨라. 

나쁜 사람이 있다면 얼른 피해라. 

시끄러운 곳 번잡한 곳을 벗어나라. 

당신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대상과 장소에서 멀어져라. 

원수를 잊어라. 부정적인 생각으로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을 부정적으로 내모는 그 사람을 망각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보라. 


당신이 진정으로 단기적 셀프 고립을 선택하고 인생을 어느 정도 '공백'으로 둘 수 있는 용기를 낼 때 그제야 비로소 당신은 홀로 우뚝 설 수 있게 된다. 

스스로 일어서라. 

혼자 일어서야 한다. 

그것이 긍정적 고립이다. 


관계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머리 위에서 관조하라. 

우주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라. 

보다 보면 당신이 보일 것이다. 진정한 당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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