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너무나 익숙하고 편리한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을 튀어나온 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실로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는 유아기의 행태에서 오는 미숙한 정신 구조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그런 미성숙한 구조를 성인이 되어서도 끝없이 차용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상 모든 것은 내 탓이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지구가 이따위인 게 왜 내 탓인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게 왜 내 탓인가?
사람들이 이렇게 엉망인 게 왜 내 탓인가?
지나가는 차가 나를 치어도 내 탓인가?
번개를 맞아도 내 탓인가?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찔러도 내 탓인가?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라는 이야기가 아닌 것은 잘 알 것이다.
그것은 신의 탓도 지구의 탓도 아니다.
탓하지 말아야 할 것과 탓해도 좋을 것의 경계까지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는 지능을 지녔지 않는가.
타인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탓하지 말라.
국가 탓, 정치 탓, 이념 탓, 세상 탓, 정책 탓, 운명 탓 하지 말라.
외부에서 이유를 찾는 것은 불행에 가장 가까운 일이 되고 만다.
내 생활 주위에서 나를 중심으로 일어난 모든 일에는 나의 책임과 탓이 일정 부분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인생은 한결 편안해진다.
누군가의 트러블도 그 자리에 있는 나의 탓이 클 때가 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가 당신을 괴롭히는가?
정확하게 그의 행동을 멈추지 못한 당신의 탓도 있고 그 회사, 그 조직, 그 모임에 몸담고 있는 당신의 탓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해치게 될 것이다.
해결할 수 없음은 결국 나의 용기와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만둔다고, 떠난다고, 외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따진다고, 싸운다고, 고소 고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해결할 수 있고 피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하루빨리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당신의 탓으로 만들어서 쭈굴 해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탓에는 선택적 기로가 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원인을 찾아볼 것인가?
바깥에서 원인을 찾아볼 것인가? 에 관한 것이다.
모든 사례를 면밀히 따져 물어볼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것은 종결이 난다.
외부의 탓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굴레를 만든다.
수천 년 전부터 당신에게 권고하는 목소리이다.
그것을 해석하자면 이와 같다.
"해결 가능한 선택을 하라."
나의 탓이겠거니 하고 해결을 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남의 탓이어도 내 탓도 있겠거니 하고 겸허히 넘기는 것이 두 번째이다.
완벽한 타인의 탓이어도 나의 처신 혹은 나의 위치를 옮겨 그것과 그를 피하는 것이 세 번째이다.
당신이 어떠한 선택을 하던 당신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인 내 탓으로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그것은 포용이며 당신의 그릇을 넓히는 길이다.
타인은 그러한 당신의 태도에 감명받고 감화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 해도 당신이 짐승 같은 이들과 어울릴 의무는 없다.
명확한 사실 아닌가.
단호해져야 한다.
남 탓만 하는 자들을 바꾸려 하지 말라.
그건 그들의 사정이다.
그들과 오랜 세월 함께하고 있는 당신 탓이 크다.
그를 해치워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를 어떻게든 당신의 영역에서 뽑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피할 수 있고 없앨 수 있다.
나는 3살에 부모가 이혼했고 8살 때는 인신매매 조직에 잡혀가 대구에서 신문을 팔았다.
10살에 탈출에 성공해서 고아원에 들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평생을 부모와 나의 운명을 탓하느라 불행했다.
그것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기억자체를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내 탓도 남 탓도 아니라면 기억을 소거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번뿐인 인생 얽매여 살지 말라.
내 탓이 편하면 내 탓으로, 잊는 게 편하면 가급적 잊기 위해 노력하라.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탓하는데 조금의 시간도 쓰지 마라.
모든 것은 당신으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