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100m를 몇 초에 뛰는가?
혹시 초등학교나 국민학교 시절 10초 초반대의 준족이었는가?
아니면 나처럼 20초에 가까운 사람이었나?
당시에는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도 뭔가 확실히 앞서 나가는 체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었다.
물론 지금 하는 이야기는 당신의 물리적인 속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나 자신을 아는 것만큼이나 나의 속도를 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정확하게는 내면의 속도이다.
내가 가진 내면은 강도가 있고 크기가 있고 속도가 있다.
당신이 인생을 살면서 발휘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크기는 바로 위의 3가지로 결정이 난다.
내면의 크기가 얼마나 큰가.
얼마나 단단한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가?
우리는 흔히든 마음을 키우라는 이야기는 많이 듣는다.
마음을 작게 키우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고요한 마음을 만들라거나 차분하게 하라는 등의 성질에 대한 주문은 있어도 마음을 적게 가지라는 말은 좀처럼 통용되기가 어렵다.
강도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하지 마음을 연약하게 먹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유연한 것과 물러터진 것과는 차이가 있다.
유연하면서 강하길 주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속도는 다르다.
속도만큼은 개개인의 재량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보폭과도 유관하다.
나의 내면이 달려가는 속도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는 가속도의 힘을 알아야 한다.
너무 빠르면 페이스가 오버되어 완주가 힘들거나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너무 느리면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 마처 망각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속도를 우리가 속한 사회의 속도에 맞춰두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그것도 외형의 속도 말이다.
20살이 되면 좋은 대학에 가고 30살에는 대기업에 연봉 얼마에 수도권 혹은 인서울 자가아파트를 소유해야 한다. 몇 살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등등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내면의 속도를 외형에 맞추며 사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내는 속도가 아니라 목줄에 이끌려 끌려가는 경주마 혹은 마차 앞 말의 속도이다.
채찍과 당근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주체성'을 망각한 채 달려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당신은 자유의 몸이다.
자유인의 신분으로 당근과 채찍, 동기와 대가 없이 달려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달려본 당신의 속도는 어떠한가?
"이 일을 한 달간 하면 000만 원의 보수가 주어집니다. 열심히 달려보시죠!"
"이 일을 죽을 때까지 하면 당신은 즐거워집니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거예요. 죽을 때까지 그냥 해보시죠."
당신은 어느 것이 진정으로 당신의 속도를 계측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정녕 동기와 목적, 강인한 목표, 수행, 희생, 결과, 기대, 보상 이런 것들로 달리게 하고 속도를 만끽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당신의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내면의 힘이다.
그것은 약간의 의지력이며 95%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의해 결정되는 행위의 총합이다.
당신은 느리게 살고 싶은가 빠르게 살고 싶은가?
진정으로 당신의 내면이 원하는 속도, 내 인생을 오래도록 평안하게 할 나만의 속도는 무엇인가?
조금 느려도 괜찮다.
비교하며 살지 말라.
남의 차, 남의 집, 남의 재산에 곁눈질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지식, 나의 깨달음을 타인과 비교할 수 없듯이 나의 속도 또한 타인과 비교할 것이 전혀 되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만의 속도 대로 살아가야 한다.
가장 작게, 가장 느리게, 천천히, 일주일에 혹은 한 달에 한 걸음씩 나아가도 된다.
태풍에 500년 된 거목은 쓰러져도 풀잎에 붙은 달팽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