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끊어내야 한다.
우리는 술을 끊고 커피를 끊고 담배를 끊는 등의 행위를 단순히 해당 대상으로 부터의 절연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독'에서 벗어난 다는 것을 의미한다.
혐오는 중독성이 강하다.
혐오는 매우 편리한 강박이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수백 가지의 채반과도 같다.
(구멍이 숭숭 크기별로 뚫려 있어서 큰 것은 남고 그것보다 작은 것은 빠지는 구조의 그것)
구분 짓고 등급을 매기길 좋아하고 우열을 가리길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매우 적합한 감정이다.
혐오는 매우 옳은 나를 돋보이게 하는 가장 편리한 수단이다.
당신은 혐오를 통해 별다른 행동 없이 당신이 우위를 점했다는 착각을 하게 해 준다.
나아가 자아도취 수준까지도 끌어올려 준다.
히틀러가 위대한 게르만민족이라는 기치아래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바로 그 혐오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혐오 공화국 안에 살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혐오의 주제들을 나열해 보자.
- 남녀
- 노인 청년
- 군인
- 노키즈 유아
- 미혼 비혼
- 설거지론, 퐁퐁이형
- 임신
- 성소수자
- 비건 육식
- 캣맘
- 칼부림으로 구현되기 시작하는 묻지 마 범죄
- 빈곤
- 질병
- 인종
- 모든 단에 뒤에 '충'을 붙이는 사례 '맘충' '한입충' '급식충'
- 직업 (오토바이, 트럭, 택시, 레커, 핸드폰, 보험, 중고차, 노동조합, 접대부)
여자라서, 아시아인이라서, 비건이라서, 동성을 사랑해서, 중고차를 팔아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대체 피해 갈 구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
가난도 혐오의 대상이 되며 부자도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나라를 지켜도 혐오받고 오토바이만 타도 혐오받는다. 정말 숨만 쉬어도 혐오와 혐오를 주고받는 사회라는 게 존속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혐오가 부르는 것은 끔찍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와 불신밖에는 없다.
바닥을 찍고 있는 출산율, 혼인율에 이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20대 남녀의 연애와 섹스 횟수 또한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인류는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게 틀림없다.
노인은 공경받지 못하고 공격받고 있고 아이들은 점점 드나들 식당이 줄어든다.
너도 나도 어느 한 집단에 속해있을 수밖에 없고 나 이외의 집단에 입에 담을 수 없는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때로는 상대의 목숨을 해치면서 까지 말이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결국 피곤하고 살기 빡빡한 사회가 된다.
지구상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이 주는 교훈을 우리는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
얼마나 비극적인 대사인가.
뿌리 깊은 세대 간, 남녀 간, 이념과 종교로 인한 혐오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접하는 혐오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혐오의 중독으로부터 멀어지자.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생각을 멈춘다.
혐오도 부정적인 생각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보다 몰입이 아주 손쉽다. 스토리가 있고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혐오를 멈추는 것은 개인이 혐오라는 감정자체를 부인하고 거부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때나 줄어들 수 있다.
'나부터 혐오를 끊어내자.'
에브리타임, 블라인드, 커뮤니티, 유튜브, sns에서 보이는 수많은 혐오의 공작들을 외면하자.
당신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행동에 사용해야 한다.
방구석에서 글과 영상을 보며 증오와 분노를 증폭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은 영 '멋'이라는 게 없다.
혐오의 습관을 버리자.
혐오는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