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다. 사실, 너무나도 괜찮지 않아,라고 내 마음이 말하고 있다.
자려고 누우면 생각나는 장면들. 이상하리만큼 이상하다. 내 마음인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머리가 나쁜 걸까. 도무지 결론을 내지 못한다. 이럴 때 생각나는 질문이 있다.
"왜 불행을 미리 당겨와?" 직장 선배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그러게요, 저는 왜 그럴까요.
이상하리만큼 가벼워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콧바람에도 훌훌 날아갈 정도로.
훌훌. 또다시 잊어버리고 미련 없이 날아갈 수 있도록. 어딘가에 도착한 내가 맘에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 풍경이 맘에 들어서 내가 마음에 들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
너무 무거워진 사람은 가벼워지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웃고 싶고. 그러니까, 그냥 헤퍼지고 싶다.
헤픈 웃음. 그 웃음이 부러울 때가 있다. 삶이 그런 거 아닌가. 별 거 아닌 거에 웃기고, 별 거 아닌 것에 눈물도 나고. 좋아졌다가 싫어지고. 싫어졌다가 좋아지고. 별 관심 없어지고. 변덕 부리고 싶다.
마음껏 변덕쟁이로 살아보고 싶다. 마음껏 노래 부르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싶다. 배 아플 때까지 웃고 싶다.
오늘 상담 선생님이 그랬다. 왜 못하냐고. 착한 아이 행세를 하지 말라고. 억압하지 말라고, 내버려 두라고.
어릴 적 부모가 싸우는 틈에서 불안해했던 아이. 세상의 전부에서 세상을 잃어버린 아이.
울타리를 지키느라 혼자서 눈물 콧물 흘리며 고군분투한 아이. 그 아이가 아직 여기에 있다고.
눈치 보느라 남의 기분만 맞추느라, 그렇게 사랑받느라 애쓰지 말라고. 20년 동안 쌓아온 업적은 착한 아이 행세. 그 타이틀 마저 뺏길까 봐. 벌벌 떨지 말라고. 부모를 이해하려 부단히 애썼지만 아이에게 내려진 보상은 이혼이었기에. 그 아이는 철저히 세상에서 무너져야 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보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필요한 게 뭔지,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사회에 나가서도그렇게 살았다. 싫어도 맞춰주고 웃어주고 좋아해 줬다. 돌아온 것은 나를 짓밟는 사람들이었다. 웃음으로, 눈빛으로, 말로, 행동으로, 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로. 결국에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 나는 조언을 들을 뿐이지, 누구의 말도 믿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는다.
남편이 4년 전 선물해 준 미하엘 엔데의 책 <끝없는 이야기>를 드디어 꺼내 읽었다. 미루고 미룬, 작은 용기가 나에게도 생긴 것일까. 늙은 켄타우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보더라도 절대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이 순간부터 너 자신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무기 없이 떠나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그냥 내버려 두어라.
어린 여왕 앞에서는 모든 것이 똑같은 것처럼
너도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추한 것이든, 어리석은 것이든
지혜로운 것이든 상관없이 전부 똑같이 여겨야 한다.
너는 그저 찾고 물어볼 수 있을 뿐이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란다.
절대로 잊지 마라. 아트레유!"
자, 어쩔 수 없이, 어쨌거나, 당신은 이제 어른이네요. 그렇다면 스스로를 스스로 키울 수밖에요. 이제 진정한 모험이 시작되려고 하나 봅니다. 오늘은 늙은 켄타우로스의 말을 빌릴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