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를 알게 된 건 첫 직장이었다. 사석에서 만난 적은 없었고, 직장을 옮겼을 땐 일로 만난 사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작은 우연으로 인연이 길어졌다. 퇴근길에 지하철 기둥 귀퉁이를 돌다가,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스쳤다.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설마, 하고 메시지를 남겼는데, 그녀도 나였는지 고민했다고 답장이 왔다. 길을 걷다 아는 사람을 마주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였다.
그렇게 종종 안부를 물으며 일 년에 한 번은 보는 사이가 되었다. 다시 겨울. 징글벨이 울리고, 알록달록 전구가 옛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엽서를 골라 주고받았던 기쁨.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고 싶은 마음에 앙증맞은 엽서 하나를 골랐다. 카드를 열어보자 입체 모양의 세계가 펼쳐졌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집, 그 위로 하늘을 나는 산타와 루돌프. 물론 선물도 한가득 싣고.
그 사이 친구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사람들 사이로 얼굴이 언뜻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시니컬한 표정, 하지만 무언가 눌러 담긴 듯한 눈빛. 치열한 방송국에서 일할 때 이런 표정을 자주 지었다. 상사는 그녀에게 “좀 웃어라”며 쓴소리를 했지만, 나는 그 표정 너머의 외로움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체념 같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같기도 했다. 나 역시 매일을 버티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다르지만, 결국 같았다.
손에 든 엽서를 흔들었다. "크리스마스 편지, 써주고 싶어서 골랐어."
"나도 쓸래, 써주고 싶어!" 우리는 카페에 마주 앉아 편지를 썼다. 마주 앉아 조용한 시간. 마음을 꾹꾹 눌러 작은 엽서에 담았다. 편지봉투에 정성스레 넣고, 따끈따끈한 마음을 서로 맞바꿨다. 앉은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읽었다. 그녀의 마음을 들고 천천히 보았다. 몇몇 문장은 내 어두웠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순간, 그녀가 나보다 훨씬 더 나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주고받는 편지는 난생처음이야." 그녀가 말했다.
정말, 이제야 크리스마스답다.
"작년에도 겨울에 만났었어, 이 맘 때쯤." 기억을 포개어 보니, 작은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되었다. 일로 만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우연을 붙잡아 서로를 알게 되었다. 사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를 사실 조금 걱정했다.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나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순간에 깃들어 있다. 작은 엽서 한 장, 조용히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담담히 전한 응원 속에서 따뜻함을 찾았다. 올겨울, 이 온기가 우리를 오래도록 감싸기를.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