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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May 19. 2023

고산병이라는 변수가 맺어준 인연과 행운

나 홀로 남미여행 - 2일 차

 쿠스코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나를 맞이한건 상쾌한 아침공기가 아니라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태어나서 느껴본적 없었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정도의 머리아픔을 느꼈다. 곧 나는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고산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어제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을 때 숨이 살짝 가쁜거 말고는 너무나도 괜찮아서 나는 고산병이 없는 행운의 몸인가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이른 판단, 엄청난 착각이었다.


 시간은 8시 반. 일어나서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두통때문에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다. 눈 앞이 어두웠다. 그래서 일단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팠지만 계획한 일정이 있으니 몸을 움직여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다행히 같은 층 아저씨가 타이레놀을 주셔서 약을 먹고 옷을 대충 입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리마에도 같은 이름으로 있던 이 아르마스 광장은 쿠스코에서도 마찬가지로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이곳에 내가 우선 가야했던 이유는 바로 파비앙에서 결재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파비앙은 한국인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이다. 이 곳에서 나는 마추픽추와 비니쿤카 무지개산 당일치기를 모두 예약했다. 재밌는건 여기서 주인장 파비앙은 한국인도 아니고 한국 가이드도 없다. 단지 한국인을 주 대상으로 한국어가 간판에 적혀있고 카톡을 한다. 나같이 개인으로 여행 오거나 친구 한두명과 같이 온 경우에는 외국인들과 한 팀이 되어 투어를 하게된다. 파비앙은 굉장히 친절했고 나는 쿨거래를 마친뒤 나왔다. 참고로 파비앙 여행사는 아르마스광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쿠스코 아르마스광장

 

 머리아픔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나는 쿠스코 대성당에 10솔을 내고 들어갔다. 근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텅 빈 성당에 혼자 삼십분은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여행 무사히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어느새 졸고있었다.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갈지 고민했지만 계단을 올라가면 테라스가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아르마스 광장의 풍경을 위에서 훤히 내다볼수 있었다.


대성당 테라스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원래는 점심때 알파카 리조또를 먹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도저히 이 상태로는 더 돌아다닐 수 없다고 나는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 꼼마로 다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꼭 실물로 보고 싶었던 12각돌을 만났다. 잉카문명의 정교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길에서 장사하시는 아주머니께 한 컷을 부탁드렸다.

아픈 머리로 12각을 세어보았다

 

 임무를 모두 완수하지 못한채 방에 들어왔다. 같은 층 형님 한분이 고산병 증세 완화를 위해 많이들 마신다는 코카차를 타주셨다. 이 분은 어학연수를 위해 쿠스코에 5개월째 거주하고 계셨는데, 아침에 타이레놀 주신 아저씨와 오후에 산페드로시장에 갈거라고 했다. 나도 가보려고한 곳이었기에 같이 가기로했다. 그리고 일단 나는 다시 누워서 눈을 좀 더 붙혔다.  


 오후 3시반. 일어나니 두통이 조금 나아졌다. 우리는 산페드로 시장으로 향했다. 도보로 20분정도 걸렸다. 시장 근처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북적였다. 시장부근은 언제나 소매치기를 조심해야한다. 나는 마추픽추와 비니쿤카에서의 사진을 위해 마음에 드는 판초가 있으면 하나 마련할 생각이었다. 조금 둘러보다 괜찮은 디자인의 빨간 판초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을 물어보니 65솔을 제시하신다. 바로 깎으려 했지만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단호하셨다. 그래도 페루 5개월차 형님께서 65솔이면 굉장히 좋은 가격이라고 하셔서 나는 판초를 구매했다.

 산페드로시장에서의 쇼핑을 마친뒤 5시 쯤, 우리는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러갔다. UCHU라는 식당에 갔는데 스테이크를 파는 나름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이 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스테이크도 팔지만 바로 알파카스테이크를 팔았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알파카의 맛에 대비하기 위해 알파카와 소고기를 골고루 주문했다. 그리고 페루의 술인 피스코 사워도 한잔씩 마셨다. 술은 굉장히 상큼하면서 내 스타일이었다. 알파카고기도 소고기와 견줄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했다. 결론적으로 성공한 저녁식사였다.


알파카는 맛있다


 배가 불렀고 해가 슬슬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쿠스코의 야경을 볼 수 있는 크리스토블랑코 전망대에 올라가기로 했다. 전망대까지 우버를 타고 갈 수도있지만 쿠스코 거주 5개월차 형님은 걸어서 올라가는 길을 알고 계셨고, 배도 불렀겠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확실히 고산지대여서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확 찼다. 경사가 높아 쉽진 않았지만 다음날 있을 마추픽추와 비니쿤카 예습이라 생각하고 걸음을 이어갔다. 두통이 슬금슬금 올라오고 숨이 가파오를 때 쯤, 저멀리 흰 예수상이 보였다. 전망대에 도착한 것이었다. 전망대에서 본 야경은 걸어올라올때의 힘듦을 바로 잊게 만들었다. 쿠스코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야경 감상을 마무리하고 걸어내려와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새 거의 아홉시였다. 나는 다음날 새벽 3시 45분에 마추픽추로 떠나야했기에 빨리 씻고 내일 필요한 짐을 챙겼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마추픽추와의 만남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시작한 하루였다. 아니, 예상은 했지만 내가 방심했던 변수였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다고 하지만 고산병은 자칫하면 여행에 큰 지장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발고도 3400m 잉카제국의 수도는 역시 만만한 곳이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되돌아보면 굉장히 보람찬 하루였다. 비록 알파카 리조또는 먹지 못했지만 혼자였다면 쳐다보지도 못했을 알파카 스테이크를 야무지게 먹었고, 혼자였으면 무서워서 올라가지도 못했을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야경도 보았다. 내일부터 정말 강행군 시작이다. 컨디션 관리 잘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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