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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Jul 11. 2023

무지개산 비니쿤카와 쿠스코 한식당에서 맛본 기적

나 홀로 남미여행 - 4일차

오늘은 비니쿤카에 오르는 날이다. 무지개산으로 유명한 비니쿤카는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보고 어떻게 저런 곳이 실제로 존재할까 하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나는 진짜 산에서 저렇게 진한 무지갯빛이 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중에 그 사진이 보정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역시나 인터넷에서 보이는 건 다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접 방문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있었다.


새벽 4시 40분, 밴이 숙소 꼼마 앞으로 왔다. 이번 투어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파비앙에서 예약했다. 전날 마추픽추는 쿠스코보다 해발고도가 낮았지만 비니쿤카는 해발고도 5000m에 다다르는 곳이어서 걱정이 컸다. 아직 두통이 남아있고 고산병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산 입구까지는 차 타고 총 3시간 조금 덜 걸렸던 거 같은데 중간에 멈춰서 아침식사를 했다. 나는 속이 안 좋을까 봐 간단히 과일을 몇 개 먹었다.


비니쿤카 입구 도착.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꼈다. 지금 내 몸상태로는 절대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가벼운 하이킹 수준의 코스인데 걸어서 한 시간 반정도 거리였다. 나는 바로 말을 타고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가격은 60 솔. 내려가는 것까지 합치면 80 솔이지만 나는 올라갈 때만 타기로 했다. 100 솔짜리 지폐 밖에 없었는데 블로그에서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나는 다행히 잘 거슬러 받았다.


말은 천천히 걸어간다

말을 타고 가도 거의 40분 이상을 올라간다. 그다지 높은 경사의 오르막길은 아니었지만 워낙 고산이어서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근데 말도 끝까지 가는 게 아니다. 말이 갈 수 있는 거리가 있다. 말이 내려주는 공간에도 포토스팟이 있지만 정상을 찍으려면 대략 20분 정도 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이 구간이 정말 마의 구간이다. 경사가 가장 심해서 나는 정말 다섯 걸음에 한 번씩 쉬었던 거 같다. 진짜 너무 숨차고 머리 아프고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해발고도 5000m를 내가 언제 또 가보겠어' 라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진짜 더 이상 글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게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이제부터 정상까지 걸어간다.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정상만 바라보며 오르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지개산의 풍경을 봤다. 머리 아픈 게 잠시 잊힐 정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었다. 뚜렷한 무지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무지개산이라고 불릴만하다고 생각했다. 정상에서 어제 마추픽추에서 뵈었던 한국분을 만났다. 이번에도 그분께서는 나에게 인생샷을 선물해 주셨다. 5 솔을 지불하고 알파카와도 한 컷 찍었다. 날씨는 다행히 너무 좋았다.

알파카 귀엽다

정상 바로 밑자락에서는 장사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엄청 고소한 튀김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곧 나는 이게 알파카를 튀긴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알파카와 사진 찍고 있는데 옆에서는 알파카 튀김을 팔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마치 집에서 병아리를 키우면서 야식으로 뿌링클을 시켜 먹는 모습일까. 하지만 나는 이 튀김의 후폭풍을 익히 듣고 왔으니 쳐다도 보지 않았다. 먹고 배탈 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더라.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너무너무 친절하셨다. 나를 제외하고 투어를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스페인어를 했는데 나에게 따로 오셔서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다. 사실 생각하는 내용은 딱히 없고 이 무지개산이 발견돼서 유명해진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이 기억이 난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는 걸 보시고 계속 상태를 확인해 주시고 고산병 증세가 치유된다는 무언가를 계속 얼굴에 발라주셨다.

설명중. 머리가 아파서 아무말도 들어오지 않는다.

내려올 때도 말을 타고 올걸 그랬나. 나는 내려오는 길에 기어코 토를 했다.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나를 부축해 주셨다. 말이 부축이지, 내 몸뚱이를 정말 끌고 내려와 주셨다. 다시 밴에 올라탔을 때 나는 반쯤 실신한 상태였다. 돌아가는 길에 아침 먹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나는 도저히 입맛도 없고 먹을 기운도 없어서 먹지 않았다. 쿠스코에 돌아오면 시간은 4시 정도 된다.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몸을 꾸역꾸역 이끌고 꼼마로 돌아왔다. 체크아웃은 했지만 내 큰 배낭을 맡겨두었다. 짐을 찾고 폰을 충전하고 있는데 꼼마에서 거주하고 계시는 형님을 만났다. 우리는 같이 한식을 먹으러 갔다. k-food라는 한인마트 겸 한식당. 나는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라면과 제육볶음을 시켰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시험기간 때 몰래 먹은 왕뚜껑과 까르보붉닭, 제주도에서 자전거 종주를 하며 먹은 해물라면에 이어 내 3대 인생라면으로 감히 꼽힐 라면이었다. 고산병이 단숨에 나아지는 기적도 맛봤다. 제육볶음까지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내 안에 숨어있던 애국심이 다시 완충되는 시간이었다.

완벽


잊지 못할 식사를 하고 형님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우버를 타고 곧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다.  긴 밤이 예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쿠스코에서 리마로 넘어간 뒤, 리마에서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그리고 산타크루즈에서 라파즈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큰일 났다. 리마에서 1시간 반 안에 환승해야 하는데 리마행 비행기가 출발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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