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월] 공군 상병의 자기 계발 일지
글쓰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더웠던 여름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었던 것 같다.
걷기만 해도 초파리가 달라붙어 하루종일 짜증 나고 신경이 날카로운 시기였다. 초파리는 내 거대한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귀에 들러붙어 울리는 맴맴 소리가 너무나도 거슬렸다. 근데 문득 나도 누군가에겐 초파리 같은 존재 일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름만 지나면 나는 정말 행복할 거야’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도 했다. 근데 또 문득 긍정적인 생각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합리화, 정신승리가 해석, 마인드컨트롤과 같은 표현으로 미화되는 느낌이랄까.
친했던 선임들이 한두 명씩 떠나가고 그 자리는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진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자주 불안에 휩싸인다. 벗어나려고 사투를 버리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불안의 원천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 해결책이 간절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책 두 권이 바로 불안과 예수였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어디선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이미 그 문제의 절반을 해결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불안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나눈 알랭 드 보통의 분석에 공감했다. 내 불안의 이유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하니 마음이 살짝 가벼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내가 저지른 죄의 더러움을 마주할 때 무릎을 꿇는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증거다. - 프랑수아 모리아크, <예수>
불안에서는 불안의 원인에 대한 통찰에 대해 감탄했다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예수라고 생각했다. 종교와 믿음에 대해서는 아직 조심스럽고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줄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마음가짐으로 불안을 즐길 수 있을까?
토플은 몇 번 치러봤지만 토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행히도 토익은 군인 할인이 있다. 그것도 무려 50%.
시험을 볼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어떤 시험인지 궁금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거짓말 한 스푼 안 보태고 단 한 문제도 풀어보지 않은 채 시험장에 들어섰다. 아, 시험 30분 전에 내가 애용하는 '나무위키'에서 토익에 대한 정보를 쭉 훑어보았다.
결과는 985점. 이 정도면 그래도 아직 내 영어 실력이 다 죽진 않았네 싶으면서 못 받은 5점이 아쉬워진다. 난 리스닝에서 좀 실수하고 리딩은 나름 수월했다고 생각했는데 리딩에서 점수가 깎였다. 리스닝할 때, 호주나 영국 발음이 중간중간에 섞여있어 당황스러웠다. 문제 많이 풀어보고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충분히 점수 올릴 수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12월 1일에 있는 JLPT 시험에 접수했다. 응시료 지불까지 모두 했으니 나는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한동안 일본어의 늪에 빠져서 생활하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공부하며 느낀 점은 단어가 가장 기본이라는 것. 문법이나 독해 공부를 하려고 해도 우선 단어부터 알아야 한다. 히라가나, 가타카나에 한자까지 외워야 해서 어렵지만 꾸준히 해나가야지. 청해 실력 향상을 핑계 삼아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도 꾸준히 보고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아는 표현이 한두 개씩 들리기 시작하면 신기하다.
이미 워낙 유명하지만 아이묭의 marigold라는 노래를 추천해 본다.
길고 길었던 여름이 드디어 끝날 기미를 보인다. 잊지 못할 여름이었다. 여름이 더운 만큼 겨울도 더 춥게 느껴지겠지.
하루종일 아무 생각 안 하고, 때로는 너무 많은 생각에 잠겨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물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