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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Jun 07. 2023

반강제적 꼬마철학자(1)

왕따의 고민 : 진짜 공부란?

수십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의 변두리 소금창고라는 마을 어느 집에서 육 남매의 여섯째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에게는 두 가지 운명이 따라다녔는데 막내라는 것과 사내로는 첫째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누나가 다섯이었고 남자아이는 혼자였다.

이러한 가족구성의 특징은 그 아이에게 막내의 자유로운 사고와 첫째의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그 아이는 좀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데 유치원도 2년 다니고 도시락에 계란 후라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족 중의 누구도 그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한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몰랐다.

방학식 때 나눠주는 성적표에는 모는 과목이 "가"였고 체육만 "양"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이를 혼내지 않았다.

단, 아버지는 방학하고 돌아온 아이에게서 성적표를 확인하고 방학선물을 주고 오토바이에 태워서 물고기 잡으로 교외로 같이 놀러 갔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랑한다",  "믿는다" 등의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생활은 조금 많이 달랐다.

공부도 못 하고 한글도 모르는 아이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운이 나쁜 날에는 괴롭힘을 당하고 거친 친구들에게는 맞기도 하였다.

친구의 손찌검으로 볼이 빨갛게 물들어 집에 올 때는 어떤 거짓으로 변명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 좋았다.

일부 친구들이 놀아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소수여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사실 가장 혼자였던 시간은 수업시간이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에게는 책도 칠판의 판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만으로 수업이 이해되지 않았다.

수업시간은 잠도 못 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미친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상상하고 생각하기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 생각의 대상은 공부였다.

본인은 공부를 안 하는데(아니 못 하는데)

친구들은 진짜 공부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를 봤다.

뒤좌석의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 것 같았다.


대각선에 앉은 친구를 봤다.

그냥 낙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반에서 정말 공부하고 있는 친구는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고 의자에서 일어나서 봤는데 잘 안보였다.


너무 궁금해서 의자 위에 올라가서 관찰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지켜보고

책상보다 높은 창문틀에 올라가서 내려보았다.


그리고 선생님께 발각되어 혼나고

다음날 아버지가 학교에 와서 선생님과 면담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아버지에겐 혼나지는 않았다.

다만 행동의 이유만 물으셨고

사실대로 친구들이 공부를 하는지가 궁금했다고

말씀드렸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진아의 괴상한 행동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이 행위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공부라는 행위는 듣기, 보기, 쓰기 등 다양한 활동이라는 것을 아이는 깨달았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집중하고 몰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언젠가는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과 같이 집중하면 자신도 공부를 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엉뚱하지만 전교  1등을 상상하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전교 꼴등이 1등을 꿈꾸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엉뚱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아이의 집에는 불운이 닥쳤다.

건강했던 아버지는 머리에 혈관이 터졌고

엄청 긴 기간 동안 병원에 입원하셔야 했으며

퇴원해서도 왼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셨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다고 표현했다.


그때까지 아이에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슬펐고 무서웠다.

몇 날을 울고 오랜 기간 동안 슬퍼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한글을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최소한 읽을 줄 알아야지 아버지를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한글을 배웠다.

그리고 전과(학습지)를 보고 공부했다.

이왕 시작한 배우기이기에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이후 아버지의 경제활동은 재개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묵을 쑤어서 시장에 팔았고

매일을 힘들어하셨다.

아이는 자신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당장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이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주지 않았다.

두 번째는 그럼 나중에 돈 벌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는 아이가 기술을 배우거나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행위를 뜻 하였다.


아이는 몸이 둔하고 특별한 재능이 없었고 배움에 투자할 돈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글을 배웠고

중학교 2학년 때 알파벳을 익혔으며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정석을 풀었

고등학교 3학년 때 상상했던 전교 1등을 하였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1등을 꿈꾸게 했던 호기심과

막래에게 주어진 자유로움,

첫째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부모님의 믿음과 사랑이었다.


이제 그 아이는 반백이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인생 2막을 고민하고

다시 꿈을 꾸고자 하고

날마다 자신을 위해서 한 가지를 기도한다.


"꿈을 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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