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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Jun 07. 2023

반강제적 꼬마철학자(2)

혼자 걷는 길 혼자만의 생각-진짜 생각은 뭘까?

반강제적 꼬마철학자에게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공부도 못 하고 기괴한 행동을 하니 좋아하기 힘든 캐릭터였다.

그래서 주로 혼자서 걸어 다녔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그때

아이의 나이는 12살 국민(초등) 학교 5학년이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지정해 준 친구에게 한글을 배웠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를 모시고 산에 갔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라면과 냄비를 챙겨서 산에 갔다.

그곳에는 많은 할아버지들이 계셨고 이야기를 나누고 불도 피우고 라면도 끓여 먹었다.

거의 모든 할아버지들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아이에게 기특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는 기특이라는 단어는 불쌍한 사람에게 칭찬해 주는 용어라고 생각했다.

기특하기가 싫었고 그냥 특별해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들과 대화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하루에 열명이 넘는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유일한 꼬마인 아이에게 선택받기 위하여

그분들 모두가 이야기 배틀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훗날 아이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은 할아버지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아이가 성적을 쉽게 올린 것도 그분들의 말씀들이 일종의 선행학습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도 들었다.

할아버지들의 면면을 보면 수십 년 동안 교사, 경찰, 경영자, 자영업자, 건설노동자 등 모두 대단하셨다.

하루는 교장을 마치고 은퇴하신 할아버지가 "생각을 잘해야 해!", "생각이 옳아야 해!" 등의 얘기를 해주셨는데 생각이 무엇인지는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아이는 생각이 뭔지 궁금했고 나름 어떤 것이 생각인지 정리를 하고자 노력했다.


그 시기 아이는 등교도 하교도 혼자서 걸어 다녔다.

왜냐하면 평소 아버지를 모시고 산에 가는 바람에 동네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길을 걸을 때면 "생각이 뭐지?" 고민에 빠지곤 하였다.

"지금 나는 생각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각인가?"

"어려운 산수문제를 푸는 것도 생각인가?"

"공부해서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도 생각인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행위도 생각인가?"

"아픈 기억, 좋은 기억, 나쁜 기억도 생각인가?"

고민을 해봐도 생각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정말 어려운 말을 그냥 쉽게 했다고 판단했고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교장할아버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하늘이 푸른 어느 휴일 아이는 라면과 냄비를 챙겨서 아버지와 산에 갔다.

그런데 항상 흐르던 약수터의 샘물이 말라있었다.

집은 한참은 떨어져 있었고 애써 챙겨 온 라면을 갖고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인근주택에 가서 물을 얻으러 가시겠다고 했다.

아이는 "아빠 오늘 그냥 집에 가서 밥 먹으면 안 돼?"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물을 얻으러 가시겠다고 했다.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 물병을 들은 상태로 산아래로 걸어가는 아버지를 혼자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주택가로 가서 물을 얻어오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칭얼거리면서 아버지의 물병을 받아 들고 내려가는데 아버지가 한마디 하였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 받아들이기 마련이야!"

물병을 들고 산에서 내려와서 "어느 집에 가서 물을 얻을까?" 고민하는데 경찰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먼저 무엇하냐고 물었고 물이 필요해서 내려왔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집은 인근에 있었고 물과 더불어서 반찬도 챙겨주셨다.


아버지가 중풍이라는 병에 걸리고 엄마는 더 많이 바빠지고 더 많이 힘들어졌다.

묵을 만들어서 팔고, 육 남매의 도시락도 쌓아야 하고, 법원에 가서 재판도 아야 했다.

아들만 보면 항상 웃었던 엄마였는데 "사랑한다.", "믿는다"라고만 말씀하셨던 엄마였는데

그때 이후 "미안하다"라는 말이 더 추가돼버렸다.

그런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어서 아버지의 말을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 받아들이기 마련이래!"

"엄마가 힘들어하면 아들도 힘들어!"

엄마가 우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었다.

그 이후 엄마는 아들에게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안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더 감사했고 아이도 그 상황을 더 잘 받아들였다.


교장할아버지를 다시 못 만났지만 아이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생각을 좀 알게 되었다.

"생각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라는 것이다.


생각을 잘하는 것은 상황을 잘 파악하라는 것이고

생각이 옳아야 한다는 것은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 옳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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