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이 Jul 25. 2023

꿈을 꾸게 하소서

왜 기도해야 하는가?

한계상황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신(절대자)을 찾는다.

내가 이해하는 야스퍼스의 실존주의이다.


불교의 관음경을 보면 절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관세음보살을 찾으라고 한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이 도와준다고 한다.


그럼 신에게 기도는 절박하고 위급할 때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기도는 항상 해야 한다.

왜냐하면 꿈을 꾸기 위해서 이다.


[Episode 1]

2008년 1월 나는 학위를 마치고 새로운 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석사를 받으면서 쓴 논문을 학술단체에 우수논문으로 제출한 상태였다.

나는 새로운 근무지에 적응하기 위하여 이른 시간에 출근하였고 어느 때처럼 야외에서 커피 한잔을 하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까치가 울었다.

또 한 모금 마시는데 까치가 또 울었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순간 "우수논문에 선발되었나?"라고 생각했고

두 시간 뒤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Episode 2]

그렇게 우수논문상을 받고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그날도 이른 시간에 출근하여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까치가 울었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는 있었지만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 예측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이후 밥을 먹을 때마다 기도한다.

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절대자에 대한 기복만은 아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리스트업 하기 위한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원하는 것이 없는데 노력이 동반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바라는 것이 있으면 계획을 만들고 행동에 옮기고 노력하게 되고 그렇게 하면 신도 기도를 들어준다.

매번은 아닐지라도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응답을 받는다.


기도의 첫 제목은 바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꿈을 꾸게 하소서!"

작가의 이전글 반강제적 꼬마철학자(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