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힘들었을 그들을 생각하며...
2024년 11월 30일, 마느님께 "내일 광청종주를
다녀오겠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니
허락해 주셨다.
(단, 오후 3시 30분까지 복귀!)
그 덕에 눈, 전쟁, 삶 등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산행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
광청코스는 경기 광교에서 서울 양재까지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는 종주코스로
광교산, 백운산, 바라산, 우담산,청계산으로
이뤄져 있어 강남5산이라고도 한다.
광교산의 광과 청계산의 청을 따서 광청코스 또는광청종주라고 불려지고 거리는 약 25km이다.
(청계산부터 광교산으로 가면 청광코스라고 부름)
이번 산행은 EOS(마라톤 모임)와 함께했고
아침 7시에 광교역에서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놀란 것은 모든 것이 눈으로 덮여있다는 것이다.
인도도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웠는데
이는 바로 앞의 미래를 암시하는 중요한 복선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태양도 하늘을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밝게 붉어서 산길의 눈을 다 녹일 것 같았는데
현실의 눈은 화사한 햇살보다 강력해서
등산 내내 산길을 사수하고 있었고
그 미끄러움은 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광청코스를 10번 정도 완주했다.
대부분 혼자서 걷거나 뛰었고
정상에서 사진도 찍지 않았으며
물과 간식도 걸으면서 먹었다.
하지만 꼭 세 번은 멈춰 섰는데
두 번은 광교산이고 한 번은 매봉(청계산)이다.
광교산에는 625 전쟁 유품이 발견된 두 곳
(등산로를 사이에 두고 비석이 마주 보고 있음)이 있고
매봉에는 수송기 추락으로 숨을 거둔 군인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보통은 단정히 서서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그곳에서는 편히 계실 것을 기도하였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분들이 누군가의 아빠 혹은 아들이었다고 생각하며 슬픔을 나눴는데
이번에는 그분들이 누군가를 아빠라 불렀을 것이고
아들이라고 불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더 먹먹해졌다.
제발 그곳에서는 편하게 행복하게 계시기를
더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 산행 며칠 전에 서울과 경기 남부에 폭설이 내렸다.
눈은 땅에만 쌓인 것은 아니었다.
나무, 바위 그리고 지붕 위에도 많은 눈이 있었다.
나뭇가지가 무성한 나무는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 하고 찢어지고 쓰러졌다.
나는 조금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쓰러진 나무를 피해서 걸어가면 그뿐이었으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는 몇십 년 지켜온 그곳에 쓰러져 긴 생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추모했던 군인 분들을 다시 생각해 봤다.
그들이 느낀 무서움, 고난, 그리움 등의 무게!
그것을 버티고 또 버티다 쓰러졌을 처절함!
쓰러지고 찢긴 나무와 다르지 않았을...
잠시 또 그렇게 먹먹해졌다.
이런 생각으로 쭉 산행을 이어갔고
첫 번째 봉우리 형제봉에 도착했다.
작은 산 아래 얕은 구름이 있었고
그 위에 띠 형상의 얇은 구름이 있었는데
우리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나누는
경계선(THRESHOLD) 같았다.
저 선을 넘는 간절함이 있으면
무언가가 이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속으로 진지하게 다시 기도했다.
우리를 지켜준 그분들 어떠한 무게도 느끼지 않고
편안하시기를...
이 글은 좀 글루미하지만
그날 산행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도
행복하고 밝게 이어오듯
걸음마다 들리는 눈 밟는 소리도 즐거웠고
신발틈을 타고 들어오는 시린 습기도 찌릿했으며
밝고 선명한 하늘과 신선한 공기는 경쾌했다.
전반적으로 행복함에 의미있는 생각이 함께한
매우 특별한 산행이었다.
실제로 화창하고 온화한 어느 겨울날에
눈길을 걷고 설경을 보는 것은 상상이상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걸으니 12시가 조금 넘었을 때
광교산, 백운산, 바라산 그리고 우담산을 지나서
하오고개에 도착했다.
마느님과의 약속시간을 고려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삶의 무게를 지러 가야 했다.
완주를 못한 아쉬움보다
더 많은 선물을 받은 산행이었다.
그리고 내 삶의 무게를 제대로 잘 짊어지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이 나라를 지켜준 선배 전우님들 감사합니다.
특별한 산행을 허락하신 마느님 감사합니다.
특별한 산행을 만들고 함께하신 EOS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