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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Jul 27. 2016

아버지 이야기#9 기다려주기 1

2016년 7월 27일 기다림은 가장 큰 응원 2-1

   정확하게 40년 동안 아버지와 내가 세상살이라는 동행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들을 기다리는 아빠"이다.

   그 첫 번째가 내 존재에 대한 기다림이다.

아버지는 1931년 8월 28일에 태어나셨고 32세에 이쁜 우리 엄마를 만나서 결혼하셨으며

   33세에 우리 집에서 제일 이쁜 첫째 누나를 낳고 2년에서 3년 터울로 가족을 늘려갔다.

그러나 나와 만남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첫째 누나를 만난 이후 아들을 낳기 위한 모든 노력이 동원되었고 심지어는 넷째 누나는 경상도식으로 다섯째 누나는 경기도식으로 아들을 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지으셨다.

결국 내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양력으로 1976년 1월, 음력으로 1975년 12월이니 아버지 연세 45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버지 친구분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손자들도 많다.


   두 번째는 내 건강에 대한 기다림이다.

   우리 누나들이 기억하는 애기시절 내 모습은 하얗고 토실토실한 아기 같은 아기였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내 몸집이 커짐에 따라 누나들하고는 달리 나는 서서 오줌을 누었고 신기한 누나들은 지켜보기까지 했다고들...

이런 것들은 생리적인 것이고 다른 면도 달랐는데 누나들은 씩씩하고 건강한 반면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은 팔과 다리가 얇고 배만 툭 튀어나왔고 이불에 지도를 자주 그리며 어둠 속에서 거울을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비교적 약한 심신을 갖었다. 이런 나의 심약함 때문에 밤이 되면 우리 집 모든 거울은 뒷면으로 돌려놨고 체질 개선을 위해 보약, 인삼, 꿀, 날계란, 우유 등은 거의 매일 먹어야 했으며 때에 따라서 개구리, 잉어, 보신탕 등을 먹었고 심지어 동네에서 개를 잡으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간을 먹었고, 송치(소 뱃속에 있는 송아지) 같이 구하기 힘든 음식들도 먹었다. 또 유치원 때부터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부모님과 뒷산에 올라갔고 이어서 아침 6시부터 태권도장에서 운동을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아버지의 노력에도 나의 심신은 크게 단련되지 않았다. 잔병치레 많은 허약한 신체와는 달리 호기심이 많아 보자기를 두르고 축대(2층 옥상 높이)에서 뛰어내려 정강이뼈가 2등분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다리가 부러져서 아파하는 아들을 업고 병원까지 한달음에 뛰는 아버지의 등이고 뼈마출 때 괴로워하는 아들을 참아 못 보고 돌아 서서 있던 아버지의 등이다.

   내가 다리가 부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그때가 내 나이 12살, 아버지 연세 56세이다. 그때까지는 나는 온전히 돌봐짐의 대상으로 완전한 응석쟁이였는데 더 이상 약한 마음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잠자는 것도, 아침 운동도, 하교 후 노는 것도 아버지와 함께 였는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후부터는 혼자서도 자야 하고 친구들과 놀아야 했다. 신기한 것은 그때부터 내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온순했던 내가 태권도 대회 나가고 국기원에서 겨루기상이라는 것도 받고 한글도 몰랐던 내가 공부를 하고 반장선거도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은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아버지에게는 조바심이 없었다. 그냥 좋은 것을 먹이고 운동을 꾸준히 시키기만 하셨다. 그리고 이런 말은 많이 하셨는데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와 "노력하면 언제나 결과는 돌아온다. 결과가 바로 안 보여도 반드시 언젠가는 돌아온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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