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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Oct 29. 2017

엄마 이야기#2 언어의 마술

사랑한다. 믿는다. 자랑스럽다.

나는 우리 엄마 나이 38살에 태어난 늦둥이다.

내 위로는 누나 다섯 명이 있었고 난 여섯 번째 끄트머리 막래이다.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였고 엄마를 독차지하는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자랐다.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12살까지 나는 "한글"도 몰랐고 심지어 특수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게 항상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사랑하는 아들 믿는다."

"우리 아들 자랑스러워..."

오늘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뵈었는데 불혹을 넘긴 아들에게 같은 소리를 하셨다.


어떤 분은 자신을 키운 것은 바람이 팔 할이었다고 하였는데 내가 여기까지 살아오는 것은 엄마의 이야기(사랑, 믿음, 자랑)가 전부이다.

그런데 그 언어가 아들을 항상 행복하게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무한한 책임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사랑, 믿음 그리고 자랑스러움은 세밀하고 정확한 지도는 아니지만 그 기대를 이어가기 위하여 노력하게 하는 마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 기대를 지키기 위하여 끄트머리 막내는 홀로 고민도 하고 상상도 하며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노력하였다.


어머니의 사랑, 믿음 그리고 자랑스러움이라는 언어는 아래와 같은 마술을 부렸다.

국민학교 때는 5학년까지 한글을 몰랐던 아이가 6학년에서는 반장선거에 나가게 되었고

중학교 2학년까지 알파벳을 끝까지 못 썼던 아이가 졸업할 때 반에서 2등으로 졸업하고

고등학교 3학년 첫 수능 모의고사 100등 밖에서 한 달 만에 전교 9등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묘약이 더 있었으니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러웠고 어머니는 도토리와 메밀로 묵을 쑤어서 시장에서 팔았다.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자라스러운 아들 중학교 등록금도 밀릴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어머니의 표정에서 웃음은 사라졌고 항상 어두운 얼굴로 살았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끄트머리 막래인 내가 "엄마가 인상 쓰면 너무 힘들어! 웃어!"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정말 밝은 표정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돈을 빌려도 빌린 돈을 제때 못 갚아도 엄마는 웃으려고 노력했다.

엄마보다 37살 어린 아들이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살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솔직히 그때 제일 못하는 것이 공부였으나 할 수 있는 것도 공부밖에는 없었다.

내 미래 때문이 아니라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우며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어서 공부했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내 복장은 반바지와 반팔이었는데 이는 밖에 나가지 않고 졸지 않겠다는 내 신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하루에 수능 모의고사 1회분을 풀고 정리를 해야 잠을 잤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 생각나는 모든 것을 투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생활이 흐트러지면 글을 썼는데 내용도 더럽고 사람들은 글을 읽고 웃지만 나는 울면서 쓴 글이다.

 


제목 : 변비


변비는 작게 여러 번 배만 아프고 찝찝하다.

화장실에서 불현듯 산고의 아픔을 생각한다.

작게 여러 번...  내가 지금 배가 아프듯...

어머니의 마음이 더 아플 것이다.

난 작은놈은 되지 말아야겠다.


오늘 엄마 식사를 많이 못 하신다.

조금 더 느려진 발거름, 많아진 한숨을 보았다.

헤어지기 전에 안아드리는데 내 얼굴은 웃는데  내 마음은 흔들린다.

"엄마!사랑해!고마워!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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