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2월은 아무래도 옷정리의 달이다.
바람결이 따스해지고, 보스포루스가 쨍한 에메랄드 빛을 되찾을 때.
두꺼운 겨울 옷은 정리함으로 보내고
가벼운 봄옷을 꺼낼 때다.
옷을 꺼내 하나하나 펼치다 보니
옷 정리함 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비닐.
내 아이가 입었던 배냇저고리다.
지퍼백 안에 곱게 접혀있는 손바닥만 한 아기 옷.
옷이 너무도 작아서였던가, 혹은 향기가 날아갈까 걱정됐던 마음이었던가. 배냇저고리만 지퍼백 안에 담겨있는 걸 보면.
그 작은 옷에 코를 박고 깊이 숨을 들이마셔본다.
아기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지금은 내 키만큼 훌쩍 커버린 아이가 이렇게나 작았다니. 이게 요정이 아닌 사람의 옷이라니. 침대 위에 배냇저고리를 깔고 그 위에 아기를 눕혀 인형놀이하듯 조심조심 팔을 끼워 넣던 모습. 손이 야물지 못한 어설픈 엄마가 아기의 작은 팔이 부러질 새라 손에 땀을 쥐며 돌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과 관련된 어떤 것을 보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이 아닐까 한다.
며칠 전 엄마의 칠순 생신이었다. 엄마의 그런 중요한 날을, 함께하지 못해 그저 아쉽고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나중에 한국 오면 다 같이 밀린 생일잔치를 몰아서 하자며 딸을 위로했다.
엄마 괜찮아. 동네 친구들이랑 거하게 파티했어. 동갑이 셋이어서 우리끼리 칠순을 세 번하는 거야. 어제가 엄마 차례였고.^^
사진 속 소녀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를 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의 목에 둘러져 있는 머플러가 너무 낯이 익었는데, 그건 내가 대학생 때 하고 다니던 머플러였다.
아니, 세상에 엄마. 저거 나 대학생 때 하던 머플러 아닌가?
응, 그거 맞아.^^
울 엄마도 정말 대단할세.
저게 어디 있었대?
색이 맘에 들어 요새 즐겨하고 있어.
면도 부드럽고.^^
딸이 대학로 길거리에서 사서 몇 개월쯤 두르고 다니던 머플러를, 칠순 잔치에서 하고 있는 나의 어머니.
그 사람의 어떤 것을 버리지 않고 보관한다는 것은
그래. 사랑이라고 밖엔…
오늘은 쇼핑몰에서 머플러를 샀다. 이번에는 특별히 더 엄마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심혈을 기울여 골랐다. 과연 이 머플러는 22년 전의 딸이 하던 머플러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12년 전의 내 아이가 입던 배냇저고리.
22년 전의 내가 두르던 머플러.
그 안엔 개인의 사소한 역사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역사를 간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사소하지 않은 일이다. 간직하는 것, 그것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너는 소중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