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둘이 있을 때, 뭐 하세요?

by 장미화


우리 가족이 셋 이상이 된 이래, 처음으로 남편이랑 단 둘이 밤을 보낸다. 아이들이 둘 다 친구네 집에서 잔다며 이불 보따리를 싸서 나갔다. 이웃에 아이들과 또래인 멕시코 형제가 산다. 운 좋게도 첫째 둘째 모두 우리 아이들과 반 친구라 매우 정답게 지낸다.


아이들을 그 집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오붓한 분위기를 즐기자며 나섰다. 보스포루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온종일 주룩주룩 비가 내려 푸른 전망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읽고, 어린 연인들처럼 셀피를 찍으며 깔깔대기도 했다.


저녁 6시쯤 되자 나는 아이들이 가 있는 집에 연락을 했다. 둘째가 혹시 마음이 바뀌면 바로 데리러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해서였다. 둘째는 겁이 아주 많다. 아홉 살인데도 아직 엄마랑 잔다. 단호하게 제 방에 눕혀도 꼭 한밤중에 깨서는 안방으로 기어들어온다. 그런 아이에게 단짝 친구가 자기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심지어 형까지 가서 잔다니 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친구에게 흔쾌히 그러마고 했으나 마음은 계속 갈팡질팡이었다. 자고는 싶고, 무섭긴 하고. 마침 어제 공놀이를 하다 손가락을 살짝 삐었는데 그것 때문에 자는 건 못할 것 같다고 한다. 무서워서,라고 말하기 싫었는지 가기 바로 전까지 손가락 핑계를 댔다.


"나는 거기서 못 잘 수도 있어.

아직 완전히 결정 못했으니까.

아… 손가락만 아니었으면

편하게 잘 수 있었을 텐데!!"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문 앞에서 “난 손가락 때문에 못 잘 수도 있으니까!! 연락할게!!” 하던 둘째였다. 그러나 친구의 엄마가 말하길 둘째는 아무 문제없고, 많이 신이 났으며, 당연히 자고 간다고 했단다. 우리 둘째가 무섭다고 했더니 친구가 베개 밑에 십자가를 넣어줬다고 한다.


둘째를 데리러 가야 하는 만약의 상황이 사라졌다. 나와 남편에겐 정말 하룻밤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둘만의 밤이라… 남편이랑 둘이 있을 땐 뭘 해야 할까? 남편은 스테이크라도 썰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운치에 취해 치즈케이크+당근케이크를 혼자 입에 털어 넣었던 난, 속이 니글니글했다. 결국 스테이크의 무드를 깨트리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라면 먹을래?”


남편은 혹시라도 이 사람이 스테이크 제안을 덥석 물까 불안했던 게 분명하다. 거나하게 취한 부장님이 꼬부라진 혀로 2차를 외치듯 신나게 가방을 챙겼다. 집에 도착하니 컴컴한 집안의 적막이 살짝 어색했다. 넷플릭스로 아무 영화나 틀어놓고 우리는 라면을 끓였다. 아이들과 먹을 때 못 넣었던 새우, 파, 양파, 달걀을 있는 대로 때려 넣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신나게 이 밤을 즐겼다. (첫째는 새우 알레르기, 둘째는 달걀 알레르기가 있다)


문득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그를 만난 것이 벌써 15년 전이다. 잘났는데 잘난 척하지 않는 남자. 내 눈엔 그가 소신과 순수를 함께 간직한 이 시대의 마지막 남자 같았다. 결혼 7년 차 까지도, 출장 간 남편에게 영상통화가 오면 애들이 아니라 내가 울었었다. 그러나 부부가 아무리 사이좋아도, 나중에 아이들이 빠지고 둘만 남게 된다면? 그 진부한 표현이 떠오른다. 앙꼬 없는 찐빵.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아이가 없는 부부를 만났을 때였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아이가 없어서 연애하는 기분일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있으면,

부부가 대화를 해도 거의 애들 얘기뿐인 것 같거든요.”


그러자 무덤덤한 표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도 개 얘기밖에 안 해요.”


그 얘길 듣고 나는 껄껄 웃었다. 그들은 커다란 개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떠나고 난 후의 우리를 그려봤다. 노부부가 사는 집이 너무 고요해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더라는 이야길 들은 적 있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를 잃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떠났다고 하여 잃었던 나를 다시 찾는 여정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즐겁게 살고, 나 또한 지금처럼 즐겁게 살 것이다.


아이들의 빈자리는 다만, 뻥 뚫린 채 남은 생을 사는 것일 테다. 아니다. 뻥 뚫렸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흘러넘치는 기억들을 끌어안고 살겠지. 다시 올 수 없는 기억들. 그리워서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기보단, 그저 소중해서 흘려보낼 수 없는 기억들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