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작은 서점 이야기

by 장미화


어린 시절 우리 동네의 작은 서점을

간절히 그리워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을 거다. 서점에서 책을 거의 사지 않았으니까. 돈이 없어 책은 대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서점에선 꼭 필요한 문제집만 샀다. 그런데도 그 서점이 좋았다. 공간의 아늑한 분위기와 새 책 냄새가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한참 부스럭 대다 가도 서점 아주머니는 신경도 안 썼다. 원체 과묵한 분이었던가, 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 적 없다. 그렇다고 무서운 인상의 아주머니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반갑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 싶다. 어쩌면 그 무관심 덕분에 내가 더 편히 드나든지도 모르겠다.


문방구가 사라지고 동네 슈퍼가 사라지듯, 작은 서점도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게 급변하는 시기에 자꾸 옛날 것, 그대로인 것을 동경하니 과연 누가 공감할까 싶다. 요즘 시대에 동네 '작은 서점'이라니,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전에 이곳 '브런치'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가보고 싶어요…” 댓글을 달까 말까 고민하다 다음 글을 읽었는데, 아 이런,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았다고 한다.


북적이지 않는 동네 서점. 최소 20년은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작은 서점. 데 이 소망은 참 이기적이다. 북적이지 않는다는 건 손님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인데, 최소 20년은 그 자리에 있으려면 당연히 책이 많이 팔려야 가능한 일일 테니 말이다. 결국 서점 주인이 큰 이익을 창출하지 않아도 본인의 삶이 굴러가야 한다는 어려운 결론에 이른다.


현재 '브런치'에서 진행 중인 독서 챌린지는 신청하지 못했지만, 사라져 가는 지역 서점의 불빛을 지키자는 취지가 아름답다. 지역 서점 특별판 제작 도서가 나온다면 선주문하고, 무엇보다 이제 작은 서점을 들를 때면 그 순간 끌리는 책을 꼭 한 권씩 구매할 생각이다. 나의 이기적인 소망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며칠 전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한 탁심을 걷는데 친구가 말했다.


“신기하다. 이런 번화한 거리에 서점이 한두 개가 아냐.”


과연 사람이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인가, 나와 다니는 지인들은 비슷한 것에 눈길을 둔다. 정말 그곳엔 작은 서점들이 많다. 관광지의 중심, 더욱이 ‘쇼핑의 거리’라고 하는 곳에 서점이 많다는 건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골목에선 구석구석 더 많은 작은 서점이나 헌책방들을 볼 수 있다. 무릎 관절을 잘 단도리하며 내려가다 보면 어느 서점에서 '책과의 블라인드 데이트'를 제안한다.


보물찾기 하듯 책을 둘러본다. 포장지에 책을 예측해 볼 수 있는 힌트들이 귀여운 손글씨로 쓰여있다. 한글 책이었다면 사랑스러운 아이디어에 홀딱 반해 한 권 집어 들었을 것이다. 유리문을 밀고 서점으로 들어간다.


서점을 구경하는 동안 손님은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름다운 서점은 그에 어울리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입구에 앉아있는 점원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리고는 내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가려는데, 아… 점원이 나를 보고 따뜻한 눈을 한번 지그시 감았다 뜨며 미소 지었다. 순간 오래전 우리 동네 작은 서점 아주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 시절 서점 아주머니는 내가 반갑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작은 서점이라는 곳은, 그 편안한 무관심을 즐기러 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어서 오세요!” 하고 큰소리로 맞이했다가, 이것저것 만지작대고 빈 손으로 나가면 쳐다도 안 보는 그런 상점이 아닌 곳. 북적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베스트셀러 쪽을 기웃거리다 의무감에 한 권 집어오는 그런 대형서점도 아닌 곳.


따스한 정적 속에 종이냄새를 맡으러 가는, 그런 곳 말이다.

이스탄불이라면 어디서든. 이제 안 보이면 허전한 고양이 밥그릇과 고양이. 서점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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