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금처럼 살아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by 장미화


좋아한다, 사랑한다, 아낀다, 라는 말들로 표현이 안 될 만큼 특별한 친구가 있다.


어쩌면 그는 나와 너무 달라서, 매사에 다르게 반응하는 그 모습 때문에 더 좋은 것 같다.


어느 날 그와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였다. 속력이 빠른 그가 백 미터가량 앞서고 있었다.


신나게 달리는 길 한가운데 웬 밧줄 같은 것이 보였다. 휘리릭 지나가며 보니 아뿔싸!

뱀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나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야! 뱀 봤어? 나 놀라 죽는 줄!!”


그랬더니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아… 봤어?
있더라. 그… 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냥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 같은 그의 말투에.




몇 년 전,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침울해할 때였다.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답답한 속내를 한참 떠들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감히 인생에 대해 오만했나…? 나는 행복하다고,

쉽게 떠벌리고 다녔나? 그래서 ‘오냐, 너도 아픔이 뭔지 알아야지’ 하고 벌 받는 게 아닐까…"


조용히 듣고 있던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 그냥 지금처럼 살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너의 인생 방식이야.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그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응원해 준다. 물론 나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의견을 이야기해 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를 비난한 적은 없다. 그건… 기본적으로 나를 대하는 그의 눈길 자체가 좀, 지나치게 따스하기 때문인 걸 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어쩌면 칭찬과 아첨을 통해 우리를 치명적 나르시시즘에 머물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나를 우쭐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으므로, 나도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가 2025년이 가기 전에 나를 본다고 이스탄불로 날아왔다. 우리는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이야기하는 그의 뒤로 하늘이 밝았다가 금세 어두워졌다.


"중학교 때 이런 친구가 있었어. 겉모습으로 말하자면 흔히 ‘잘났다’고 말하긴 힘든 아이였지. 그런데 나는 그 아이가 참 부럽고 괜스레 질투도 났다. 왜냐하면 예쁘지도 않은 그 친구가 무슨 일인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기에, 그 자체로 빛이 났기 때문이야. 그 아이는 자주 수첩에 만화를 그렸는데, 나도 그 친구를 따라 만화를 그리곤 했어.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묻더라. 난 딱히 꿈이 없었어서 ‘만화가나 될까?’라고 말했지. 그런데 며칠 뒤 그 아이가 내게 선물이라며 뭔가를 내밀었어. 그게 뭐였는지 알아? 물감과 붓이 들어있는, 그림 그리기 세트였다. 내가 지나는 말로 한 것을 기억하고 그런 선물을 준거야. 나는 한마디로 충격을 받았어. 그런, 마음이 담긴 선물을 처음 받아봐서 어안이 벙벙했던 거야. 아까워서 한동안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게 나이 든 지금도, 너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사십 대가 되어도 우리는, 이런 유의 대화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총총 빛나는 눈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없이 좋았다. 그는 내게, 참 좋은 사람이다. 나도 그가 그냥 지금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그의 인생 방식이, 생각 회로가 너무도 좋아서. 변하지 않았음 한다.


참 좋은 친구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니, 참 좋은 남편이 아이들에게 뜨끈한 어묵탕을 끓여 먹이고 있었다. 오늘 엄마가 없어서 아빠가 게임을 얼마나 많이 시켜줬는지, 그래서 어찌나 행복한 날이었는지를 신나게 조잘대는 아이들을 안고 웃었다.


참 좋은 날을 보낸 올해 마지막 날, 나는 문 앞에 살그머니 복주머니를 걸고 들어왔다.


블랙핑크와 ‘케데헌’을 좋아하는 우리 앞집 꼬마가 내일 아침, 새해 첫날 이 고운 복주머니를 보고 소리 칠 것이다.


“촉 귀젤!!! (너무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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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