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봄, 여름엔 비 오는 날이 드물다. 그러다 시월에 들어서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겨울은 이스탄불의 ‘우기’라고 불릴 만큼 비가 자주 온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스탄불에 온 건 시월이었다. 둘째 날부터 비가 내렸다. 해외이사 전문 컨테이너에 실어 보낸 짐은 도착하지 않았기에 우산이 없었다. 서둘러 마트에 가 우산 4개를 샀다. 남편이 우산들을 겨드랑이에 끼고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경비 아저씨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집 현관 쪽에 우산꽂이를 하나 놓고 우산을 두었다. 며칠 후 이웃이 잠깐 집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현관에 둔 우산꽂이를 보더니 멈칫한다. 우산들을 보며 껄껄 웃는다.
나는 속으로 '아니, 뭐 이렇게 우산에 반응들이야?' 싶었다. 그런데 이스탄불의 비 오는 거리를 걷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스탄불엔 비 오는 날 우산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랑비에 우산을 쓰지 않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데도 우산을 안 쓰는 사람들이 많다. 비에 쫄딱 젖은 생쥐가 되어 걸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가죽잠바를 멋지게 입은 아저씨가 우산 없이 비 오는 거리를 걷는다. 거의 옷 입고 샤워기 아래 서 있는 수준인데도, 절대 뛰는 법은 없다. 옆에 있던 친구가 말한다.
“와… 아저씨 진짜 상남자네. 인조 가죽이길!”
어떤 날, 비 오는 날 도로 한편에서 혼자 춤을 추는 남자를 봤다. 어떤 안무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막춤인데, 어찌나 열심히 추는지 모른다. 더구나 얼굴엔 지극히 순수한 행복이 물들어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산 없이 비를 흠뻑 맞는 희열도 있을 텐데 거기다 춤까지! 무슨 사연일까. 나는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을 떠올려가며 그 공짜 공연을 흘끔흘끔 구경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비 오는 날이면 학교 앞이 인산인해였다. 저마다 우리 엄마가 왔나 목을 쭉 빼고 찾는다. 웬일인지 울엄마는 한 번도 우산을 가져온 적이 없다. 내가 집에 가서 볼멘소리로 “엄마는 왜 안 왔어? 우산 없이 비 맞고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걸?” 하면 엄마는 깔깔 웃으며 말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 딸이 서운했어? 아이고 그깟 비 좀 맞으면 어때서?”
일전에 남편이 보여준 오은영 박사의 영상이 생각난다. 요즘 아이들에겐 ‘건강한 결핍’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식을 워낙 귀하게들 키우다 보니 결핍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을 아이들은 점점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불현듯 울엄마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껏 다정하게 말꼬리를 도레미파솔, 솔, '솔'까지 올릴 건 뭐람. 사실대로 말하자면 서운함은 잠시였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는 것이 내겐 '건강한 결핍'이었을까? 우산을 안 들고 온 엄마 덕분에 시원하게 비 맞는 즐거움을 알았으니까. 요즘 한국서 육아하는 엄마들 사이 ‘레인 부츠’는 필수다. 내가 어릴 땐 ‘레인 부츠’가 다 뭐야, 장화는 농부 아저씨들만 신는 줄 알았다. 운동화가 다 젖도록 참방참방, 친구랑 옷이 쫄딱 젖도록 뛰었다. 우산이 있는 친구도 우산을 접어두고 함께 뛰었다. 안경에 물방울이 잔뜩 맺혀 앞이 안 보인다며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우리는 날씬해서 ‘빗사이로 막가’라며 제법 까불어댔다. (이 유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비 오는 날 우산의 보호에서 벗어나 맘껏 해방감을 느꼈다.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일만 해당되는 건 아닐 테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비 오는 거리에서 우산 없음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