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게 이기는거다
나는 흔히 말하는 ‘컴플레인’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음식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나오면 머리카락을 빼고 먹고, 돌이 나오면 돌을 빼고 먹는 사람이 나였다.
그러던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깐깐한 선배들과 식당에 가면 '반드시' 문제가 생겼다. 가장 흔한 문제로는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경우다. 선배가 “왜 이렇게 안 나와?”라고 한 마디 했을 때 나는 조용히 있었다. ‘시킨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관자놀이가 따갑다. 정신을 차려보니 선배들이 일제히 막내인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가 “아… 한 번 확인해 볼까요?” 하니 선배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한다.
그럼 내가 물어보리?
그렇게 사회생활 4년 차가 넘어가니 사람 눈빛이 달라졌다. 음식이 늦게 나와서 따지는 건 둘째치고 음식 맛이 전과 다르다, 상추를 깨끗이 씻지 않았다, 면이 불어있다 등의 갖가지 이유로 다시 조리하기를 시키는 일쯤은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불친절한 직원이 있으면 명찰에 적힌 이름을 봐 두었다가 나가면서 매니저에게 직원 교육 시키라고 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선배들은 눈에 힘 빡주고 조목조목 따지기를 잘하는 후배를 보며 많이 컸다고 기특해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식당에서 '컴플레인'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애는 일도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모든 선배가 그런 것은 아님)
사회생활 5년 차가 넘어가자 나는 ‘컴플레인의 여왕'이 되었다. 돌이 나오면 돌을 빼고 먹던 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음식에서 돌이 나왔다? 당장 직원을 불러 지금 이가 빠질 뻔했는데 어떻게 보상할 거냐, 요즘 세상에 음식에서 돌이 나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열변을 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을 품고 살아야 하는 바닥에서 발을 뗐다. 나는 다시 유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낳았다. 나는 아예 찹쌀떡 마냥 흐물흐물해졌다. 아이스커피를 시켰는데 뜨거운 커피가 나와도 “아. 따뜻한 거 마시는 게 건강에 더 좋지” 하면서 그냥 마신다.
원래 따지는 게 천성은 아닌데 독한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그만 다 귀찮아진 걸까. 호텔에서 샤워기가 고장 나면 '컴플레인'은커녕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고치고 있는 착한 남편과 살아서 나도 물이 든 걸까.
지인 중에 너그럽게 사는걸 인생 철칙으로 삼는 분이 계셨다. 그래야 내 자식이 마음 아픈 일 안 겪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자동차가 발을 밟고 지나갔는데 그분은 운전자를 그냥 보내줬단다. 하늘이 도왔는지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당연히 번호를 받고 피해보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그때는 어르신이 이해가 안 갔지만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젊은 학생이나 군인, 사회 초년생을 보면 내 아이들이 곧 거쳐갈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남의 자식이 내 자식같이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 신기한 일이다. ‘컴플레인의 여왕'일 때는 어딜 가나 불만 사항이 있었다. 그런데 화를 내지 않으니 막상 화낼 일이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몇 달 전, 내 인생 최초로 식당 직원과 대판 싸우는 일이 생겼다. 한국도 요새는 '손님이 왕'이라는 인식이 많이 옅어졌지만, 여기는 애초에 그런 인식 자체가 없다. 주문한 음식이 잘못 나와도 사과하는 일은 드물다. "아, 이거 아니야?" 하며 가서는 세월아 네월아 다시 만든다. "실수했으니 서둘러야지!" 같은 서비스정신은 없다고 보는 게 편하다. 이런 이스탄불에서 그날은 보통을 넘어선 것이었다.
자주 찾는 식당이었다. 늘 시키는 치즈 피자를 시키는데 주문을 받는 직원이 신입이었다. 한참이 지났는데 피자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배가 고파 이미 입이 나온 상태였다. 원래 음식이 금방 나오는 집인지라 나는 직원을 불러 피자가 언제 나오는지 확인했다. 그는 웃으며 5분 뒤에 나온다고 한다. 다시 30분이 지났지만 피자는 나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직원을 다시 불러 주문이 들어간 게 맞냐고 물었다. 그는 주방에 확인하러 가더니 사람 좋게 웃으며 지금 만들고 있단다. 보아하니 이제야 주문이 들어간 눈치다.
아이들의 인내심에 한계가 올 때쯤 피자가 나왔는데 한눈에도 치즈피자가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내가 시킨 치즈 피자가 아니에요."
그러자 직원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어디가 아니라는 거예요? 치즈 피자 맞아요.”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여기서 한 두 번 먹어본 줄 아나요?”
“이건 치즈 피자가 맞아요. 당신이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거죠? 그럼 가져갈까요?”
눈을 부릅뜨며 피자를 가져가는 시늉을 하는 직원을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흥분하니 애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자주 하는 말인 “Are you kidding me?(지금 장난하냐?)”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진 듯 영어 단어 하나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들어온 남편이 간단히 내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Oh I see. first of all…”
하며 차분하게, 조목조목 직원에게 따졌다. 그는 피자를 가져갔지만 기분 나쁜 표정은 그대로였다. 잠시 뒤 다른 직원이 제대로 된 치즈 피자를 새로 가져왔다.
나는 다시 그 식당에 가지 않는다. 직원이 미워서가 아니다. 그와 싸우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게 너무 괴로웠다. 누군가와 싸우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내가 그때 흥분하지 않고 "이게 치즈 피자가 맞다는 거지? 그래. 알았어" 하고 대충 넘어갔다면 마음이 편했을까. 어릴 땐 작은 일이라도 참고 넘어가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가 되니, 참고 넘어가지 못한 내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고장 난 녹음기 마냥 “아 유 키딩미?”를 외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이 뿌리가 시큰거린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