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이스탄불로 건너와 두 달도 채 되기 전 12월. 아이들 학교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큰 아이의 학년이 참여하는 ‘눈의 여왕’ 뮤지컬이었다.
모든 게 낯설던 그때. 등교 첫날, 하교하는 형제의 표정이 밝아서 불안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매일 아이들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고 “오늘 학교 괜찮았어?” 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언제나 “응! 괜찮았어.” 혹은 “재밌었어.”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것이 어찌나 고마웠던지…
그렇게 2주가 지났을 때였다. 잠들기 전 큰 아이가 나에게 가만히 말했다. “엄마. 나 사실은 학교가 하나도 재밌지 않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데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와.”
언어가 달라도 신나게 뛰어놀고 어울리던 일곱 살 작은 아이와 달리, 어중간한 나이에 운동을 못 하는 큰애는 친구 사귀기가 힘들었나 보다. 늘 큰애의 학교 생활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는 발표회 소식이 반갑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식탁에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공연하는 거 알지?
근데 나는 대사가 거의 없어.
존재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아. 그래…?”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받아쳤다.
“무슨 역할인데?”
아이가 대답했다.
“아, 나무… 나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눈의 여왕에 나무가 나오긴 나오나?’
게르다도 카이도 눈의 여왕도 왕자도 공주도 천사들도 할머니도 산적들도, 심지어 눈송이도 아닌 ‘나무’.
그랬다… 조기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으니,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을 리 없었다.
내 아이는 '나무' 역할이었으며 대사는 딱 한 마디였다.
한국에서 아이는 발표회가 있으면 주인공 역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월 생이기도 하고 수줍음이 없어 늘 무대 중앙에 서거나 대사가 많은 편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우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우스운 자만심이었다.
무슨 일이든 아이가 연결되면 감정의 파동이 격해진다. 내 일이었음 가벼운 파도로 끝날 일이, 내 아이의 일이 되면 쓰나미가 되어 덮친다. 내가 존재감이 없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데 내 아이가 존재감이 없다니 마음이 찢어진다.
낙담한 아이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까. 머릿속이 시끄러운데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당연히 공연이 하기 싫다는 말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드디어 발표회 날이 다가왔다. 일찍 도착한 나는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중앙 좌석에 냉큼 앉았다. 조명이 켜지자 무대 저 쪽 끝에 아이가 보였다. 화려한 의상들 사이에서 고동색 바지에 짙은 녹색 티셔츠를 입은 ‘나무’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 하는 아이에게서 빛이 났다. 몸치인 아이가 겅중겅중 뛰는 모습을 보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역할이 작으면 대충 할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도 춤을 췄다. 공연 내내 '나의 나무'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듯했다.
참 신기하다.
아이는 언제나 어른인 나보다 나은 쪽이었다.
집에 돌아와 동화책 ‘눈의 여왕’을 찾아 펼쳤다.
놀랍게도 책의 마지막 장 삽화 가득 나무가 있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게르다와 카이의 조그만 뒷모습.
그들이 천천히 걸어 퇴장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있는 나무의 모습을,
혼자서 오래도록 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