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반찬 몇 가지

by 장미화


외국에 살며 힘든 일 중의 하나는 바로 ‘해 먹는’ 일이다. 외국에서 한국 음식은 비싸다. 첨엔 뭣도 모르고 배달시켜 먹기도 했지만 ‘이 가격에?’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익숙한 먹거리만 찾던 내가 현지 식재료에 도전해 보게 된다. 꼭 ‘내가 먹던 것’만 고집하지 않으면 의외로 한국 식재료 이상으로 맛나기도 하다. 여기서 파는 동그란 무는 겉과 속이 다르다. 겉이 빨간 무는 속이 하얗고, 겉이 하얀 무는 속이 빨갛다. 껍질을 까다 보면 겉과 다른 빠알간 속이 ‘요건 몰랐지?’ 하고 장난치는 느낌이다. 전에는 내가 먹어 본 긴 조선무만 무인 줄 알고 아시안마트를 찾아가서 사다 먹었다. 그러나 소고기 뭇국을 이 빨간 무로 끓여보니 더 달큼한 게 맛이 좋다. 파도 종류가 참 많은데 대파인 줄 알고 산 정체 모를 파에 고춧가루를 무쳐 먹으니 생각보다 훌륭하다. 이웃집 요리 고수인 내 친구는 무 대신 콜라비로 생채를 해 먹는데, 아삭아삭한 별미라고 한다.


김치도 처음엔 사 먹었지만 비싸기도 하고, 일단 맛이 없다. 한국 고춧가루가 아닌 현지 고춧가루를 사용하는지 특유의 향이 있거나, 배추 상태가 좋지 않거나, 희한하게 쓴 맛이 난다. 해외살이 자급자족의 마지막 단계는 ‘김장’이라고들 한다. 친구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나도 직접 김장을 시작했다. 김치를 절이고 버무릴 커다란 통, 일명 ‘다라이’가 없는지라 한꺼번에 대량 생산은 못 하고, 작은 배추 3-4 포기씩 자주 담근다. 저번엔 친구가 뭐 하냐고 연락할 때마다 내가 '김치 담근다'고 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세상에,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김장을 맨날 하는 여자도 있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와서 말을 건다.


오늘 저녁은 뭐야?”


갈비탕을 끓이고 있는 내게 다정하게 말한다.


“아이고, 그냥 반찬 몇 가지 해서 대충 먹지.”


갑자기 목덜미가 쭈뼛 선다.

나는 정색하며 발끈했다.


그냥 반찬 몇 가지??
지금 ‘그냥’ 반찬 ‘몇’ 가지라고 했어?


남편이 내가 대체 뭔 잘못을 했을까 생각하는 눈치다.

괜히 와서 말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아니… 난 네가 힘들까 봐 그렇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내가 왜 한그릇 밥을 자주 하는지 알아? 탕이든, 카레든, 볶음밥이든 뭐 하나를 하면 그래도 반찬 없이 뚝딱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알지도 못하면서! 반찬 몇 가지? 그 ‘반찬 몇 가지’가 제일 힘든 거야!!"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반찬 몇 가지’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 반찬’ 생각이 간절했다. 남편에게 ‘반찬 몇 가지’로 매 끼니 차려주셨을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떨쳐지질 않았다.

남편이 쉽게 ‘반찬 몇 가지’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안다. 우리 엄마들은 그런 일 따위는 뚝딱뚝딱 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불평 한마디 없이 해냈기 때문이다. 외국 음식을 자주 접하다 보니 한식은 정성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금치를 한 보따리 사다 씻고, 데치고, 무치면 나물은 겨우 두 손바닥에 한 옴큼 나온다. 먹성 좋은 아들 둘이 한 끼니에 다 먹어치우면 허무할 정도다.


예전에 내 단짝친구의 할머니가 우울증에 시달렸다. 할머니는 동네에서도 유명한 여장부셨다. 늘 활력 넘치는 할머니가 우울증이라니? 그런데 할머니를 우울하게 하는 이유가 좀 특이했다. 할머니는 세탁기를 보면 그렇게 화를 내셨다.

나는 빨래를 머리에 이고 냇가에 가서
손이 부르터라 빨래를 했는데!!
요즘 참 세상 편해졌다!!!


같은 이유로 건조기를 보면 “내가 빨랫줄에 그렇게 빨래를 너느라 허리를 못 펴는데”, 에어컨을 보면 “내가 만삭에도 한여름 살인더위 속에 주저앉아 부채 하나로 버텼는데“ 등등… 끝이 없었다. 그렇다. 할머니는 본인이 살아온 세월이 그저 한스러운 것이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억울한 것이다. 애교 많은 손녀가 말했다.


“우리 할무니 지인짜 고생 많았다~~ 근데

요즘 세상이 좋아진 걸 누구 탓을 해.

뭐, 어떻게 할까 그럼~~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식기세척기 그냥 싹 다

갖다 버리까??”


문득 울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꼭 그렇게 해야 되나? 귀찮은데…" 하면 돌아오는 말.


그게 귀찮어?
그게 귀찮으면 어떻게 산대?


뜨거운 흰쌀밥이 당뇨에 그렇게 안 좋다며 밥은 꼬옥 잡곡밥으로,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으라는 엄마에게 “아… 그렇게까지? 너무 귀찮은데” 하면


이게 귀찮어?
아이고야, 이깟게 귀찮으면 왜 산대?


그런 엄마도 종종 설거지를 하며 구시렁구시렁 하곤 했다. 그릇들이 거칠게 부딪치며 내는 깨질 듯한 소리는 덤이었다. 그럴 때면 아빠와 나는 키득대며 눈빛을 주고받았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는 거야, 그릇을 다 깨 부수는 거야…"


맞다. 요즘 세상은 참 편해졌다. 그 힘들었던 시절, 식구들 매 끼 먹이는 일이 왜 버겁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게 귀찮냐, 그게 귀찮으면 왜 살어 죽어야지, 하며 자기 최면을 걸었을 엄마. 이런 건 고생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하던 엄마.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는 게 어른이라면, 나는 아직 초등 수준이다. ‘반찬 몇 가지’라는 말에 그리 발끈하다니. 산책을 하면서 혼자 구시렁댄다.


“하여간 나도 게을러터져서는, 귀찮긴

무엇이 귀찮을까나…”


구시렁대는 내가 우스워 피식 웃는다. 앞서가던 예쁜 아가씨가 나를 돌아보며 다정하게 웃는다. 외국 살면 의외의 좋은 점 하나, 내가 뭔 말을 중얼대도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