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익사하지 않는다.

홍해에서 만난 나오미

by 장미화


거친 숨소리가 천둥처럼 귀를 때린다. 온통 뿌예진 물안경 안으로 두려움이 가득 찼다. 홍해에 둥둥 뜬 나는 혼자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분명 웃으면서 뛰어내렸는데, 갑자기 요단강 익스프레스에 올라탄 기분이다. 이러다 사람 죽겠네 싶다. 버둥거리는 발 밑으로, 끝없이 깊은 물을 내려다본다. 한 번 공포가 엄습하니 혈관이 팽창되는 것 같다. 몸속에서 무언가 펑 터질 것만 같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 갑자기 뇌리를 스친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익사하지 않는다. 스스로 깊은 물에 들어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익사 사고의 주요 원인은 수영에 대한 자신감과 모험정신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기와 노약자, 홍수나 선박 침몰 같은 재난 사고 제외)




튀르키예에 살며 무슨 ‘해’란 ‘해(바다)’는 많이도 가 봤다. 지중해부터 시작해서 흑해, 에게해, 마르마라 해, 아드리아해… 원체 바다를 좋아해 한국에서도 여름이면 바다에 살았다. 하지만 한국서는 주로 파라솔 아래 앉아 즐기거나, 아이들과 튜브를 타고 얕은 물에 동동 떠다니며 놀았다. 가끔 운동으로 수영장을 찾기도 했으니 수영을 잘하진 않아도 못하진 않는다. 그런데… 바다 수영 기준 나는 그냥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바다 수영의 기본은 깊은 물 위에서 여유롭게 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개헤엄'! 신기하게도 바다에서 만난 거의 모든 외국인들은 이것이 가능했다. 그 누구도 구명조끼나 튜브를 착용하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그들은 겨드랑이에 튜브라도 달린 걸까? 어떻게 힘 하나 안 들이고, 수다까지 떨어가며 물 위에 하염없이 떠있나 말이다. 우리가 네모난 실내 수영장에서 만났더라면, 단연코 나는 그들보다 훨씬 우아하게 자유영을 선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다에선? '개헤엄'이 승자다. 물안경 쓰고 헉헉대며 자유영 한 판 때린 내가 물미역이 되어 나올 때, 그들은 눈썹 한 올 젖지 않고 영화처럼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오니 말이다. 그래도 2년 넘게 각종 ‘해’들을 누비며, 나도 바다 수영에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엔 홍해다! 이집트에서 호핑 투어를 나간 우리는 신나게 배에 몸을 실었다. 새파란 바다를 가르고 한참을 나아갔다. 배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이리저리 항해하던 선장이 느닷없이 뿌우~ 뱃고동을 울린다. 순간 수면 위로 팔딱! 뭔가가 점프하기 시작했다. 다른 배들도 경적을 울린다.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한다. 돌고래가 나타난 것이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최소 20마리는 되어 보이는 돌고래 대가족이다. 돌고래들은 팬서비스를 확실히 해주겠다는 듯 배들을 가로지르며 점프하기 시작했다. 꼭 사람과 숨바꼭질하듯 했다. 물속 깊숙이 사라졌다가 한 순간 수면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돌고래들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눈부신 바다에서 유영하는 돌고래들에게선 미끈한 생명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바다로 몸을 던지기 시작한다. 돌고래를 따라가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흥분해서 뛰어든단다. 안전요원이 오더니 8세인 둘째는 단칼에 잘랐고, 11세인 첫째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Hey, 너 수영 잘해?


첫째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당연하지!!” 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더 정색하고 묻는다.



돌고래는 빠르고, 물살은 세.
정말 자신 있어?


안전요원의 진지함에 첫째의 태도가 수그러들며 고민에 빠진다. “자신은 있는데…”


남편은 지긋이 첫째를 진정시켰다.

“너가 수영 잘하는 건 알아. 하지만 무턱대고 뛰어들어 돌고래를 따라갔다가 오히려 많이 못 볼 수 있어. 지금은 배 위에서 돌고래 실컷 보고, 이따 스노클링 할 때 입수하자."


과연 흥분해서 뛰어든 사람들 중 아저씨 한 명이 급히 구조를 요청한다. 스노클링 장비도 없이 그냥 다이빙했나 보다. 맨몸이다. 안전 요원이 구명 튜브를 던지자 힘겹게 매달려서 올라온다. 바다에선 절대 자신의 수영실력을 과신해선 안 된다.


돌고래 가족을 뒤로하고 드디어 우리도 바다를 즐길 시간이 왔다. 나는 영롱한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로 풍덩! 기세 좋게 뛰어들었다. 첫째는 이미 사라졌고, 둘째는 남편에게 맡겼다. 스노클링 호스로 천천히 숨을 뱉으며 앞으로 한 50미터나 갔을까… 덜컥 겁이 났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온통 뿌예진 물안경 안으로 가득 찬 건 두려움이었다. 나의 거친 숨소리만이 천둥처럼 귀를 때렸다. 마침 내 곁으로 헤엄쳐 온 첫째에게 외쳤다. “안전 요원 불러줘! 엄마 죽을 것 같아!” 첫째가 “왜 그래? 진짜??” 하더니 안전 요원에게 간다. 안전 요원이 내 쪽을 쳐다보자 나는 도와 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가 잽싸게 구명 튜브 위에 내 손을 가져다준다. 뿌연 물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능숙하게 닦아 시야도 확보해 주었다. 그래도 몸이 덜덜 떨렸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영국에서 온 나오미였다.




나오미도 급작스런 공포감에 구조 요청을 한 모양이었다. 내가 돌아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을 꼬옥 잡고 토닥여주었다. 맞잡은 손의 힘으로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와 영혼의 동지가 되었다. 우리는 손을 부여잡고 함께 물속 세상을 탐험했다. 물속은 말 그대로 수족관이었다. 바다 깊숙이 내려간 다이버들의 머리 위로 손바닥만 한 니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노클링을 마치고 선상에 올라온 나와 나오미는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나오미의 남편이 웃으며 "너의 아이들은 물개던데, 너는 왜 수영 못하니?" 하자 나오미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남편에게 눈치를 준다. 내가 "나도 수영 잘해. 그런데 갑자기 무서워지고 숨이 안 쉬어졌어." 라고 하자 그녀는 자기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네가 나의 손을 잡아준 그 순간, 숨이 쉬어지더라.”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나는 너의 손을 잡은 순간 숨이 쉬어졌어.”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같은 말을 외쳤다.


네가 아니었으면 이걸 해내지 못했을 거야!!


안전 요원이 우리 곁을 지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헤어지려니 못내 아쉬워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먼 타국의 그녀를 언제 다시 만나랴. 다음 날 아침, 나오미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마음이 환해지며 어제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만난 것은 축복(bless)이었다.


홍해 한가운데서 만난 나오미를, 맞잡은 손의 온기를,

나는 언제까지고 기억할 것이다. 특히 깊은 물의 공포가 내게 손짓할 때 말이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