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중 지나가는 내게 누군가 외친다.
니하오!!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는다.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해외여행 정보를 찾아 이런저런 블로그들을 둘러볼 때 ‘캣콜링’을 당했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본다. 캣콜링은 성희롱의 어감이 강하기에 유심히 읽어보면, 상점이나 식당에서 ‘니하오!’라고 외치거나 ‘차이나~’라고 말하며 웃는 행위 등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외국에 살며 여행을 자주 하다 보니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 않다.
이제 유럽의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인이 많다. 좋은 곳엔 언제나 한국인이 있다는 말이 정말 맞다.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이제 “차이나?”라고 묻기보단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묻는다. “Korea”라고 하면 환하게 웃으며 “Oh, nice!”라고 하거나, “손흥민”을 외치거나, “아이 러브 코리아”로 답하는 경우도 많다. 금발의 외국인들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구사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젤라토 집에 갔을 때 점원이 우리에게 “어떤 거?”라고 하는데 우린 그걸 못 알아듣고 “어떤거? '어떤거'가 무슨 맛이지?”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튀르키예에는 특별한 인종차별이 있다. 한국인을 특별히 좋아한다. ‘니하오!’라는 외침은 아주 붐비는 대표 관광지에서만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바자르에서 호객하는 상인들도 요새는 ‘안녕하세요~’를 더 많이 한다.
한 번은 길을 걷고 있는데 뜬금없이 누군가 뒤에서 외친다.
생일 축하해!!
“어머, 깜짝이야. 나 오늘 생일이니?” 뒤돌아보니 젊은 여학생 두 명이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고 있다. 급한 마음에 무슨 말을 해야겠는데 생각나는 한국어가 “생일 축하해” 였던 것이다. 내가 씨익 웃으며 “안녕하세요!”하니, 그때부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어디 아파요?”, “사랑해”, “보고 싶어”… 자기들이 할 줄 아는 한국말을 줄줄 읊는다. 너무 재미있어서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냐고 묻자 드라마를 보고 연습했단다.
이번엔 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 신호에 멈춰있을 때였다. 옆 차선에 스쿨버스가 섰는데, 학생 한 명과 눈이 마주치자 검지와 엄지를 겹치는 '한국식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내가 손가락 하트로 응답하자 그 학생이 흥분해서 소리를 쳤나 보다. 스쿨버스에 타고 있던 학생들이 죄다 유리창에 붙어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것이었다. 운전하던 친구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아니 무슨, 연예인이야?”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편의점에서, 쇼핑몰에서, 심지어 국경에서 신분증을 검사하는 근엄한 경찰조차도, 한국 여권을 보는 순간 한국말로 말한다. “너무 예뻐요” 라고. 이런 튀르키예의 한국 편애 현상은 우리가 ‘형제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건 중장년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젊은 사람들은 애초에 튀르키예가 한국 전쟁 때 파병했는지 어쨌는지엔 그다지 관심 없다. 그저 케이팝이 좋고 케이 드라마가 좋은 것이다. 튀르키예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문화를 좋아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살다가 지난주 이집트 여행을 갔다. 그런데 리조트에 도착해서부터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지나가는 직원마다 내게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인종차별이고 뭐고 간에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나는 내게 ‘니하오’라고 하는 직원을 마주치면, 차가운 표정으로 외면하며 지나갔다.
이제 한국과 이집트 간에도 직항이 있고, 카이로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지는 카이로가 아닌,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이집트의 휴양도시였다. 리조트에서 3일을 지내는 동안 동양인이라곤 한 명도 못 봤다. 그러다 4일째 되는 날, 식당에서 처음으로 중국인 가족을 봤다.
직원이 지나가며 그들에게 외쳤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 중국인 가족의 너무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직원들이 내게 ‘니하오’라고 인사한 것은 내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동양인이면 으레 중국인이려니 생각할 수 있다. 되려 내가 그들에게 선입견을 심어 줬을 수도 있겠다. 동양인은 원래 인사에 답도 안 하고 냉랭한 사람들이구나, 하고.
나는 내게 '니하오' 라고 말하는 직원 앞에 웃으며 다시 섰다. "노. 아임 프롬 코리아." 그러자 그의 눈이 동그래지며 "오! 코리아!!" 라고 했다. 내가 "두 유 노우 코리아?" 라고 하니 그는 너무도 순진한 표정으로 "재키 챈?" 이라고 했다. 뭐라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저기 아저씨, 몇 년 전 미국 스무디킹에서 한국인의 영수증에 멋대로 '재키 챈'이라고 적은 점원이 해고당하는 일도 있었다고요!
재키 챈 이라…
언제 적 성룡이야…
나는 그제야 내가 당한 ‘니하오’는 인종차별이 아니라 ‘무지’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나는 직원에게 "한국어로 'Hi'는 '안녕하세요' 야. 안녕하세요~ 해봐." 했다. 그러자 직원은 "앙녕쎄요오" 하며 너무 어렵다고 한다. 그때부터 3일 뒤 내가 리조트를 떠나는 날까지 그는 나를 보면 환한 미소로 '니하오'가 아닌 '하이'라고 인사했다.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던 미소가 사려 깊은 미소로 보이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국인들이 여행 중에 맞닥뜨리는 ‘니하오!’에 무조건 발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몰라서, 무지해서 그럴 수 있다. 물론 말의 뉘앙스란 본인만이 느끼는 거라,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면 불만을 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해외여행 도중 누군가 웃으며 “니하오!”라고 외쳤다면 한 번쯤 나도 웃으며 “두 유 노우 코리아?” 라고 받아치면 어떨까. 대부분 나쁘지 않은 대화가 뒤따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