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번 보러 갈게!
내가 한국을 떠나올 때 친구들이 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 '언제'가 언제일지. 너도, 나도 모른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저 그 말에 깃든 다정함이 고맙다. 비행기 타고 12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곳으로 훌쩍 떠나는 일은, 딸린 자식이 없다면 그나마 가능할 것이다.
내 친구 P도 그중 한 명이었다. 더구나 그는 아들 둘이 딸렸다. 거기다가 그 아들들은 둘 다 초등 저학년! 나는 친구들 중에서도 특히 P가, 진짜 이스탄불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몇 달 전 P는 내게 선언을 했다. 교사인 그와 남편이 동반 휴직을 할 것이며, 가장 먼저 할 일은 이스탄불에 오는 것이라고. 그로부터 며칠 뒤 비행기티켓을 캡처한 사진이 왔다. 해외여행은 비행기 티켓만 예약하면 반은 한 건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며 살짝 부담이 실렸다. 물론 부모님과 언니, 시누이는 한차례 다녀갔지만 가족이 올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식구들은 여행이라기보단 우리 가족을 보러 오는 거라는 생각에 사실 별 부담이 없었다. '아야 소피아 보고, 케밥 먹고, 뭐 다 같이 슬슬 돌아다니면 되지~' 하며. 하지만 친구네 가족은 내가 제대로 가이드를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버쩍 들었다.
나는 먹을 것, 갈 곳들을 적은 수첩을 찍어서 P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P와 나의 메시지창은 그때부터 매일 비명으로 시작해서 비명으로 끝났다.
꺅!!!!!!!!!!
친구 가족이 이스탄불에 머문 일주일 동안, 나는 말 그대로 '가이드 체험'을 했다. 아침에 눈 뜨면 아이들 등교시키자마자 탁심광장으로, 구시가지로, 갈라타 타워로, 돌마바흐체 궁전 시계탑 앞으로, 부리나케 뛰어다녔다. 내가 여러 번 들어가 본 곳은 티켓팅을 도와준 후 근처 카페에 앉아 기다렸다. 이런 식이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입구로 들어가서 차근히 둘러봐. 보스포루스로 향해 나 있는 화려한 문이 포토스팟인데 줄이 길 거야. 처음 나오는 문에 굳이 줄 서서 기다리지 말고, 한 개가 아니니까 다음 문에서 찍어도 돼. 마지막 코스가 회화박물관인데 그 쯤 오면 애들 힘들다고 징징댈 거야. 그쪽에 정원 카페가 있거든. 회화박물관 기프트샵 옆에 있는 카페가 정말 고풍스럽고 멋지긴 한데, 애들 생각하면 넓은 정원 카페가 나을 것 같아. 거기서 커피 한 잔 하고 백조를 구경해. 그리고 화장실 쪽으로 오면 옆으로 쪽문이 있어. 거기로 바로 나오면 돼. 다시 입구로 돌아가서 나오려면 너무 지쳐. 이 더운 날, 애들 난리 날 거야. 회화박물관 전용 쪽문이야. 잘 보고 나와. 나오면 바로 길 건너 큰 카페에서 기다릴게.
함께 다니는 내내 친구는 '이건 사는 사람만 아는 (개)꿀팁'이라며 행복해했다. 같이 낯선 곳을 쏘다니며 다 안다고 생각했던 P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기도 했다.
고등어 케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서빙해 주는 아저씨에게 친구가 느닷없이 "포토?" 라고 한다. 아저씨는 웃으며 카메라를 달라고 하는데, 친구는 나에게 카메라를 준다.
"왜, 저 아저씨랑 찍어줘?"
"응. 나는 여행지에서 현지인이랑 찍은 사진이 추억이 되더라고. 신기하고 재밌어."
P는 새로운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닌 줄 알았는데, 모를 일이다.
구시가지에 갔던 날은 시장을 일정에서 뺄까 싶어 말했다.
"그랜드 바자르는 패스할까? 그냥 튀르키예 전통 기념품들이랑 이것저것 파는 엄청 큰 시장인데, 정신없고 볼 거 없다는 평이 많거든."
그런데 친구는 가보자고 했고, 의외로 시끌벅적한 바자르를 좋아했다.
야, 여기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시장이 어쩜 이렇게 웅장해?
아야 소피아 앞에서도 내가 "사진 한 장 남겨야지. 서 봐!" 하니 그제야 "아참, 사진!" 하던 친구가 바자르 한복판에서 몇 번이나 사진을 찍어달라 한다.
이번엔 이스탄불 사람들이 주말 나들이 장소로 많이 찾는 갈라타포트에 갔을 때다. 갈라타포트는 크루즈 선착장인 동시에 보스포루스와 멀리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톱카프 궁전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명소다. 그런데 이곳에 크루즈가 정박해 있을 때 방문하면 뷰가 꽉 막혀 아주 아쉽다.
하필 우리가 갈라타포트를 찾은 날 크루즈가 떡 버티고 있었다. 내가 "이걸 어째.."라고 하자 친구네 가족은 "오히려 좋아!"라고 했다. 이렇게 큰 배는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아들하고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마어마한 크루즈는 그냥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나 다름없으니 신기하긴 하다.
그동안은 갈라타포트에 왔을 때 크루즈가 정박해 있으면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P의 가족과 함께한 그날은 나도 크루즈를 재밌게 구경했다. 빼곡한 객실들, 수도 없이 놓인 테이블들, 수영장, 커다란 전광판,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크루즈가 정박한 곳의 관광수익이 대단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역시 '저마다 취향은 천차만별'이라는 게 다시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 즐길 줄 아는 이와 함께하면 내게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인다는 걸 알았다.
남편과 아이들을 숙소로 먼저 보내고 나와 P는 탁심의 밤거리를 걸었다. 빨간 미니트램을 타고 여고생들처럼 웃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우리가 함께 걷는 지금이 꼭 꿈속 같았다. 갑자기 P가 말했다.
"내가 너한테 유독 많이 징징대잖아. 그럴 때마다 너는 늘 해답을 줘. 그냥 네가 해주는 말들이 너무 좋아. 그래서 나는 네 메시지를 이렇게 캡처해 두고 가끔 다시 봐."
친구가 사진첩을 열어 내가 보낸 글자들로 가득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어우 야,
너 나 울리려고 이스탄불 왔니?
내가 울자 친구도 운다. 우리는 울다가 또 웃어젖혔다.
"외국 사는 친구 찬스가 최고다! 전에 갔던 유럽패키지여행이랑은 비교 불가야. 여행지를 이렇게 온전히 즐긴 적은 처음이야. 너무 자유롭고, 모든 게 피부로 느껴지는 기분이야. 영어 못하는 우리 부부가 진짜 생애 최고의 여행을 했어. 너 아니었음 엄두도 못 냈을 거야."
내가 누군가에게 '찬스'가 되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우리는 보스포루스에서 헤어졌다. 나는 오르타쿄이 선착장에서 내렸다. P가 탄 배가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멀어졌다. 그 순간을 오래 못 잊을 것 같다. 온 마음을 다해 그의 삶을 응원했다.
나는 나 때문에 12시간을 날아와 주어서 고맙다고 했고, 친구는 나 덕분에 12시간을 날아오는 곳엘 다 와봐서 고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