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쪽으로 마음먹는 일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본 친구들에게 벌써 두 번, 연락이 왔다.
은중이를 보는데 왜 이렇게
네가 생각나지?
극의 화자는 은중이지만, 아무래도 상연의 감정선을 더 따라가게 되어설까. 은중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 안 했다. 처음에 은중이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아, 좀 그런가?” 했고, 두 번째는 “칭찬이지?” 했다.
친구는 "칭찬이지! 사랑받고, 따뜻하잖아."라고 얘기해 주었다.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자란 은중이, 그래서 가난했어도 열등감에 물들지 않고 마냥 밝은 은중이. 그렇담 은중이에게선 노력도 없이 저절로 밝은 빛이 새어 나올까?
긍정적인 사람은 불행한 일을 겪어도 결국 행복해진다고들 한다. 결론적으론 맞는 말이라 믿는다. 그런데 그게 그냥 저절로, 쉽게 되는 게 아닌 건 확실하다. 은중이도 노력한다.
어느 저녁 신나게 삼겹살을 굽고 있을 때였다. 불가리아에서 사 와 쟁여놨던 삼겹살이다. 불가리아 삼겹살은 LA갈비처럼 긴 뼈가 많다. 나는 손톱만 한 살코기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무아지경이 되어 뼈를 분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느닷없이 입술에 불덩이가 올라온 기분에 펄쩍 뛰었다. 재빨리 찬물로 입술을 헹구는데 딱딱한 게 잡혔다. 단순히 뜨거운 기름이 튄 게 아니라 불에 달궈진 뼈가 튄 것 같았다. 요리를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거울을 보니 금세 물집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씻고 대충 마데카솔을 바르고 누웠다. 다음날 입술을 살펴보니 물집은 더 커진 듯했다. 그렇다고 말이 안 통하는 병원에 가긴 싫었다. 저녁이 되니 입술이 몰라보게 부풀어 있다.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는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내일 갈 거니 일단 화상연고를 달라고 했다. 약사 아저씨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스타네(병원)’를 말한다.
‘싸악 나아져라’ 주문을 외우며 연고를 듬뿍 바르고 잤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내 얼굴은 절망적이었다. 거울 속에 뽀로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원래 입술의 세 배가 되어버린 입술을 마주하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만일 내가 부푼 입술의 흉터를 가진 채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한참을 대기하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 가운도 입지 않은 젊은 여자가 있었다. 배우 같은 얼굴에 웃을 때 커다란 입이 꼭 줄리아 로버츠 같았다. 나는 뽀로로 같은 얼굴을 들이밀고, 더군다나 아름다운 의사 앞에 앉으니 더 긴장이 됐다. 의사는 잔뜩 부풀어 오른 입술을 소독하고 진물을 박박 닦아냈다. 그녀는 내게 거울을 내밀며 입술의 선이 원래 있었는지 물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에 과연 검은 선이 보였다. 마치 구순구개열 흉터처럼 세로로 선이 생겨 있었다. 내가 고개를 저으니 의사는 불빛을 비춰가며 유심히 상처를 들여다봤다. 등골이 오싹했다. 의사는 라이트를 끄더니 응급실로 가야겠다고 한다.
네? 이멀전시? 왜요??
의사는 놀란 나를 보고 웃으며 '돈 워리'라고 한다. 나는 '수술'의 ‘surgery’라는 단어도 생각이 안 나 의학드라마에서 주워들은 '메스'를 외치며 입술을 써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의사는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눈썹을 추켜올린다. 그냥 소독하고 연고 처방받겠거니 하고 온 병원에서 응급실행이라니. 평생 뽀로로 입술을 달고 살아갈 내가 그려졌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는 다음날 붓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윗입술에 세로선의 흉터가 남았다. 우울감에 사로잡혀 며칠을 흘려보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 마음의 날씨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번 화상 사건으로 느낀 게 있다. 밝은 사람도 충분히 어둠 속으로 기어 들어가겠구나 하는 것이다. 사소한 불행이 불씨를 당기면 말이다.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 세상에 이보다 명쾌한 말이 있을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그 ‘마음먹는’ 일인 것을!
한 달쯤 지나자 흉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런 흉이 생겼다가 없어졌는지는, 물론 나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