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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3개의 담배꽁초가 전시된 ‘순수 박물관’ -1

미치도록 순수한 사랑이야기

by 장미화


한국에 한강이 있다면 튀르키예엔 오르한 파묵이 있다. 내 나라와 지금 살고 있는 나라, 두 곳에 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있다. 아니, 이런 우연 아닌 필연이 있나! 몇 달 전 동네 수영장 비치체어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주머니를 봤다. 흘끗 책 표지를 보니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그 모습에서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혀 집에 온 나는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찾아 펼쳤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나는 장차 이 소설로 기억될 거라 믿는다’고 말한 소설. 책의 소개말부터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세상에나, 44일 동안 사랑한 여자를 339일 동안 찾아 헤매? 얼마나 가슴 저린 스토리일까! 나는 터질듯한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내용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요약하면,

상류사회의 잘 나가는 남자 주인공 케말이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였다. 부유한 집안의 아름다운 약혼녀까지 가진 장밋빛 인생을 살고 있던 케말. 모두가 부러워하던 삶을 가진 그의 앞에 퓌순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에게 강하게 이끌린 케말은 급기야 그녀와의 밀회를 시작한다. 케말은 퓌순과 헤어질 생각도, 약혼을 끝낼 생각도 없다. 두 여자 사이에서 풍요로운 행복을 즐길 계획인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케말의 성대한 약혼식 이후 퓌순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그제야 케말은 깨닫는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로 퓌순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케말은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친다. 어느 날 손가락을 깊게 베여 피투성이가 된 순간만큼은 그녀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상처를 더 크게 만들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산송장이 된 케말은 어떻게든 자신을 간호하려는 약혼녀를 곁에 방치해 둔 채 퓌순의 흔적을 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녀와 밀회를 나누던 아파트에서 그녀의 손이 닿았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만지며 위안을 받기 시작한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박적이고 미친 사랑이다. 아니, 이건 ‘사랑’이라고 표현하기 힘들다. 그냥 ‘미친 사람’의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한숨이 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어떻게, 뭐라도 결정을 내리겠지, 참으며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케말은 약혼녀와 퓌순 사이에서 바보같이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다. 감정 묘사는 어찌나 세밀한지 내가 케말이 된 듯하다. 급기야 이걸 읽고 있다는 게 한심스러워 책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어우, 이거 완전 찌질한 미친놈 이야기네.


그런데 중간에 못 견디고 책을 덮어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진짜 이야기는 케말이 약혼녀와 끝나고 퓌순과 재회했을 때부터다. 그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퓌순의 집에, 순전히 그녀를 보기 위해 8년 동안 찾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케말의 삶을 완벽하게 지배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천천히, 그녀의 숨결이 닿은 물건들을 수집한다. 사기로 된 소금 통, 재단용 줄자, 머리핀, 성냥갑, 연필, 기름병, 통조림 따개, 텔레비전 위에 놓인 개 인형, 찻잔, 슬리퍼, 귀고리, 화장수, 모과 강판 그리고 4213개의 담배꽁초 등등…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처절한 사랑에 독자인 내가 슬슬 빠져든다. 케말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속수무책으로 항복하고 싶은 감정 속에서도, 순수의 순수를 놓지 않았다. 그는 오직 맹목적인 사랑으로 삶을 흘려보냈다.


케말은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케말이 죽은 후,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오르한 파묵(작가 자신)이 그의 옛 약혼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말한다. 케말은 행색이 말이 아닌 데다 지독히 불행해 보였다고. 그녀는 케말의 가장 친했던 친구와 결혼하고 여전히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파묵은 상류사회의 그들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하며, 평범하고, 멋지다는 걸 모두가 알아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에서 케말은 ‘승리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남들 눈에 지독히 불행해 보이는 사랑이,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66장 <뭐요, 이게?> 라는 챕터가 이상하게 좋았다. 스릴러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듯 손에 땀을 쥐었다. 반복해서 열 번도 넘게 읽었다. 케말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통행금지 무렵 집에 가던 그의 차를 군인들이 불러 세운다. 그날 케말은 퓌순이 모과잼을 만들 때 사용한 ‘모과 강판’을 수집했다.


“이 물건은 누구 거요?”

한 군인이 물었다.

“제 겁니다…….”

“뭐요, 이게?”

그 순간 모과 강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말한다면 퓌순을 향한 나의 집착, 이미 오래전에 결혼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에 네다섯 번 그녀의 가족이 사는 집에 드나드는 것, 수치스러운 상황과 절망감, 내가 사실은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챌 것만 같았다. (…...) 하지만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였다.

“신사 양반, 이 물건은 당신 것입니까?”

“예.”

“이게 뭐요, 형씨?”

나는 다시 침묵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속수무책으로 항복하고 싶은 감정이 서서히 내 온몸을 휘감아 들었고, 내가 나의 죄를 말하기 전에 군인 형제가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주 이상하고 약간은 아둔한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그 아이를 칠판 앞으로 불러 수학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물었을 때, 그 아이도 나처럼 침묵에 잠겼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며, 죄책감과 무기력으로, 몸의 무게를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에 번갈아 실으며 선생님이 머리끝까지 화가 날 때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사람이 한번 침묵을 하게 되면 입을 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십 년이고 백 년이고 입을 다물 거라는 것을, 교실에 앉아 그 아이를 바라보며 놀라고 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그날 밤, 스라셀비레르 대로에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퓌순을 향한 나의 사랑도 결국 이러한 유의 어떤 고집과 내향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도 희미하게 느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은, 나의 집착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른 누군가와 자유롭게 이 세상을 공유하는 길로 나를 이끌지 못했다.


책의 초반을 넘기고 있을 때 나에게 이 이야기는 그저 ‘미친 사람’의 이야기였다.

책을 덮은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희한하게 책 제목에 박혀있는 ‘순수’에 눈길이 갔다. ‘미쳤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그들은 말하자면 ‘순수’에 미친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케말과 퓌순의 감정을 따라가며 내가 미친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이 책은 ‘미치도록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새겨졌다.




그리고 이 책에는 무시무시한 반전이 있다. 바로 이 ‘순수 박물관’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소설의 모든 것들을 재현한, 작가가 창조한 한 편의 소설이 실제임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라고 옮긴이의 말에 나와 있다. 심지어 책 안에 떡하니 입장권도 있다.



자, 이쯤 되자 '모과 강판'을, 퓌순이 건네주던 소금 통을, 케말의 손에 뿌려주던 화장수 병을, 그녀의 머리카락을, 머리핀을, 손수건을, 편지들을, 그리고 '4213개의 담배꽁초'를 직접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나는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들고 진짜 '순수 박물관'으로 향했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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