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용기
친구랑 홍콩에 다녀왔다. 쇼핑하러 간 건 아니어서 산 게 없었다. 산거라곤 숙소 옆에 있던 유명한 육포 전문점에서 산 육포뿐이었다. 부모님과 시아버지가 육포를 좋아하셔서 꽤 많은 양을 샀다. 비행기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다가 잠시 멈칫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동물이나 햄, 육포, 소시지 등은 검역대상이니 기입하라는 말이 있었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올 때 별다른 걸 사온 적이 없는 난 망설여졌다.
하필 내가 잔뜩 사온 ‘육포’가 콕 집어 명시돼 있을 게 뭐람.
음, 그래. 여기에서 말하는 건 <이것들은 검역 대상입니다>라는 거지
<이것 중에 구입한 게 있으면 압수 할게요>는 아니지 않은가! 난 당당히 ‘육포’ 라고 적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이었고, 밤 비행을 마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췌한 모습이었다. 검역관은 신고서를 보는 둥 마는 둥 스윽 보고 다들 통과시켰다. 그런데
내 신고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육포 샀어요?”
“네. 왜요?”
“이쪽으로 오세요.”
난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네? 왜요?”
나를 구석으로 데려간 검역관이 말했다.
“꺼내보세요.”
“육포요?”
“네.”
난 애원하기 시작 했다.
“한 번만 봐주시면 안돼요?”
“이 사실을 제가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은 안돼요.”
내가 굳이 안 적었으면 될 일인데, 그 직원도 난감한 모양이었다.
“제발요... 이거 제가 먹으려고 산 것도 아니고요, 부모님이랑 시아버지 드리려고 산거예요.”
“홍콩에 친구 없어요? 다시 돌려 보내줄 수는 있어요. 그 친구한테 부쳐달라고 하세요.”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럼 어쩔 수가 없어요, 저도.”
“그럼 이 육포 어떻게 하실 건데요? 혹시 아저씨가 드실 거예요?”
검역관은 하하 웃으며 그냥 포기하고 얼른 가란다.
어둑한 거리엔 때마침 비마저 내리고 있었다. 나 자신이 너무 바보천치 같았다. 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흥분해서 말도 잘 못 잇자, 남편은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난 외쳤다.
“아저씨가 내 육포 다 가져갔다고!!!!”
주변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만 샀냐? 나만 샀냐고!! 다른 사람들도 다 샀을 텐데 나만 종이에 쓴 거야!!”
“종이? 무슨 종이...?”
“입국신고서인지 나부랭이인지 그거!!”
“아......”
내 얘기에 친구들은 박장대소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건데 왜 너는 모르냐는 거였다.
명품을 여러 개 샀으니 그냥 자진신고하고 세금내자는 사람은 있어도,
굳이 육포를 자진신고 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일 거라고 했다.
“솔직한 것도 병이다. 넌 마약을 샀으면 마.약. 이라고 쓸 애야”
내가 솔직한 편이긴 하다. 대학 때, 시험 날 아침 늦잠 잔 사실을 고스란히 교수님께 고백한 사건도 있었다.
간만에 공부 좀 한답시고 밤을 새운 게 문제였다. 알람소리를 못 들은 거다.
난 눈을 뜨자마자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저 어떡해요”
“너 누구냐?”
“000인데요, 지금 일어났어요. 저 어떡해요...”
“울지 말고 얘기해라.”
그 날 오후 난 교수실에서 혼자 시험을 봤고, 내 답안지를 본 교수님은 밤새운 거 맞냐며 꿀밤을 때리셨다.
그 과목 학점이 기억은 안 나지만 다행히 좌절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모교에서 강사로 일하는 친구 얘기로는 교수님이 아직도 날 기억하신다고 한다.
옛날에 늦잠 잤다고 울면서 전화한 학생도 있었다고. 내가 친구에게 너무 부끄러우니 이 얘기는 어디 가서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하니 친구가 말했다. 교수님 말씀하시는 뉘앙스가 즐거운 추억거리를 떠올리시는 것 같았다고. 교수생활 하면서 그렇게 솔직한 애는 처음 봤다며 이렇게 덧붙이셨다고 했다.
“요즘 애들은 그렇지 않은데, 인간적이야.”
난 솔직한 덕분에 교수님께 ‘참 인간적인 학생’으로 남았다.
그럴 땐 ‘오는 길에 사고가 났었어요’ 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대학 졸업과 함께 오랜 방황기가 찾아온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도 찾고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오랜만에 서로 시간을 내 같이 밥을 먹던 날이었다. 문득 그가 말했다.
“나 한참 바닥칠 때 말이야.
그때 나 참 별로였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왜 말 안 해줬어?”
사실 그 친구의 방황은 좀 길었다.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그냥 모든 게 다 싫었다고 한다.
TV를 틀면 감동을 강요하는 광고들만 주구장창 나온다고 분노했다.
가난한 청춘이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유가 없어 친구들 모임에도 못 나가고,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열정이 있다!’ 라고 외치는 광고들.
심지어 그런 광고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광고였다.
‘도대체 저 기업과 청춘의 열정이 무슨 관련이 있지?’
‘그래서 너네 기업이 새벽까지 아르바이트 하는 나 취직시켜 줄 거야?’
청춘이 이용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내 일이 안 풀릴 땐 모든 게 틀어져 보이기 마련이다.
보기에 아름답거나, 감동을 조장할수록 더 역겨웠다고 한다.
그런 그를 일으킨 건 의외로 자신을 비난하는 선배의 말이었다. ‘네 까짓 게 날 알아?’ 하고 이를 갈았다.
그랬더니 의욕이 생기고 힘이 펄펄 났단다.
그가 허우적댈 때, 모두가 나처럼 이렇게 위로했을 거다.
“넌 지금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이제 좋은 일만 생길거야.”
핑크빛 거짓말이 너무 넘쳐 귀가 무뎌질 때쯤이었다.
“너 지금 이거 아니야.”
“이런 건 네 모습이 아냐.”
“정신 차려.”
솔직한 독설이 그를 때렸다. 아마도 희망의 말만 덩그러니 던져놓은 이들은 뒤돌아서 고개를 저었을지도.
어쩌면 독설을 해준 사람이 더 마음 깊이 그를 응원해줬을지 모른다.
진심이 담긴 솔직함은 선의의 거짓말을 이긴다.
솔직하지 못해 생기는 최악의 상황도 본 적이 있다.
정말 소심하고 유약한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결론은 이거였다.
“나 지금 동시에 두 여자를 사귀고 있어...”
그 착한 남자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거였다. 거짓말도 영악해야 잘한다고,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니 입만 열면 거짓말을 지어내야 했다.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괴로워했다. 하지만 쉽게 끝을 내지 못했다.
그는 자기를 좋다고 하는 여자가 있으면 무조건 만나고 봤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좋진 않은데 그 ‘네가 좋진 않아’ 라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였다. 친구들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 참, 미치겠네. 야! 그냥 말해!!”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럼 그 여자가 받는 상처는 어떡해?”
그가 솔직했다면, 그 여자는 종이에 살짝 벤 정도의 상처만 받았을 것이다.
그가 솔직했다면, 그 여자는 벌써 멋진 남자를 3명은 더 만났을 것이다.
그를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참 희한한 건 그는 나쁜 남자가 아니다. 오히려 전형적인 순둥이였다. 그런데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바로 그 점이, 그를 나쁜 남자로 만들었다.
육포에 관한 슬픈 추억에도 불구하고, 솔직함은 미덕이 맞는 것 같다.
했으면 했다, 싫으면 싫다, 아니면, 아니다. 라고.
솔직함도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