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화 Sep 01. 2016

가을엔 사랑얘기

 _푸르다, 흐르다

A는 사랑을 ‘결투’로 기억한다. 만나면 안 싸운 날이 없다고 한다. 길바닥 한복판에서 육탄전은 기본이었다.

커플링을 빼서 냅다 패대기친 적도 3번은 넘는다. 나중엔 본인도 아까웠는지 다시 버스를 타고 되돌아가 바닥에 내던진 반지를 찾아온 적도 1번 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을 때는 싸우러 면회를 갔을 정도였다.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물었다.


“왜 사귀니?”


남녀관계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3년을 그렇게 싸우다 헤어졌는데도 여전히 그의 뒷조사를 하며 사니 말이다.


B에게 사랑은 ‘희생’이었다. 사랑은 곧 다 퍼주는 것. 참 말은 좋다.

 하지만 B는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가 다 퍼주고 남는 건 뭐였을까? 뻔하다. 아주 크고 거대한 불만덩어리였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래?”


차마 자존심이 상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행동이 거슬릴 때마다 그 말은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꾹꾹 눌러 담은 불만은 무섭게 폭발했다. B는 꿈에서라도 전 남친 얼굴을 못 봤다며 ‘나 무서워서 다들 이민 갔나?’ 하며 깔깔댔다.


C의 사랑은 ‘안정’이었다. 좋은 학벌, 안정된 직장, 좀 사는 집안.

그런 이유에선지 가장 먼저 결혼했고 참 잘 산다. 그녀를 질투하는 지인 몇은, 완벽한 집에 시집가는 애들은 꼭 이혼 하더라며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아니다. 걱정 없이 잘 산다.


친구들이 생각하는 D의 연애키워드는 ‘착각’이다. 무조건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D는,

남자를 만나면 꼭 그 사람 걱정을 했다. ‘나를 너무 좋아해서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제발 너나 걱정해.......”

사실 그건 D만의 착각인 경우가 많았다. 그가 그토록 불쌍하다던 남자들은 꼭 뒤에서 딴 짓거리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C와 D는 만나면 항상 티격태격했다. C는 결혼해서도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살 거냐고 했고,

D는 ‘외모란 자고로 사랑이 끝난 다음에 가치를 발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말을 했다.

다 싫을 땐 얼굴이라도 잘 생겨야 같이 살맛이 날거라고.

보통은 C처럼 많이들 생각하지만, D의 얘기도 일리는 있어 보였다.

 

문제는 바로 E다.


E에게 사랑은... ‘하나’였다.

말 그대로 한번 뿐이었고, 그 사랑이 너무 강렬해서 삶을 지배했다.


12년 전에 그녀가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 모두들 말했다.

“곧 다른 사랑이 올 거야”,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 진대” 모두 똑같은 말을 해주었다. 꼭 위로라기 보단,

대부분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연인과 헤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인연이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아니면, 당장은 아니어도 오랜 기다림 끝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많고.

하지만 E를 보면 아닌 것도 같다. 아직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인생에 사랑이 하나인 사람도 있겠구나 싶다.

난 더 이상 그녀에게 ‘다른 사랑이 찾아 올 거야’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제는 사랑이 끝난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E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친구는 화를 냈다.


“그래서 나도 걔처럼 될 거란 말이야?”


난 서둘러 잘못을 수습했다. 그 자리에서 E의 얘길 꺼내다니 내가 미쳤었나 보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후로 인생에 다시 사랑이 안 온다는 걸 안다면.

 아무도 없다면. 그 사람 하나뿐이었다면. 악몽일거다. 우리는 그런 말을 원치 않는다.

누구나 희망을 좋아한다. 꿈꾸고 싶어 한다. 다시 꿈꿀 수 없다면, 희망이 없다면 살 이유도 없으니까.


C는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너무 사랑을 믿어서 걱정이야”


난 그게 왜 걱정할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랑이란 건 쉽게 변하는데 너무 믿으면 어쩌냐는 거였다.

연애하다가 헤어지는 거야 괜찮지만, 결혼을 해서도 사랑타령만 할까 걱정이라고. 그 사랑이 변했을 때 넌 백퍼센트 이혼일 거라는 거다. 그 친구의 말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무렵, 난 청혼을 받았다.


“나와 결혼해 줄래?”


‘널 사랑해’라는 말만큼 흔한 말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지구인이 앵무새처럼 말해댄다 해도 ‘사랑해’라는 말이 언제나 따뜻하듯, ‘결혼해 달라’는 그 말은 달콤했다.


내게 그 말은,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난 사랑을 믿어요.”


이렇게 들려왔다. 그래서 더 감동이었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

빛나는 순간이었다.


설렘이 흐릿해지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다.

사랑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점점 깊어진다는 걸 왜 몰랐을까?

사람이 마냥 갓난아기일 수 없듯이 사랑도 그럴 텐데.

예전처럼 ‘사랑’이란 말을 ‘변함없다’, 혹은 ‘영원하다’ 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처음 반했던 그 모습을 간직한 네가 지금 곁에 있다는 것. 조금 변했지만 또 나름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지금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이제는 변함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영원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가을하늘처럼 사랑 또한 푸르다, 그리고 흐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곁에 있는 사람한테나 잘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