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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를 여행하다

by MARY

런던을 떠나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에든버러에 오게 된 계기는 오랜 펜팔이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이 친구랑 그렇게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무슨 용기에서인지 더 깊은 인연이 되려고 했던 건지 영국에 갈 생각을 한다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 친구는 모든 일정을 조정하여 나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에든버러 공항은 아무래도 런던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괴롭게 하던 스톰은 다 물러갔는지 에든버러에 도착했을 때는 맑고 파란 하늘이 반겨주었다.

새로운 도시 그리고 청량한 날씨 덕에 이미 기분이 들뜨고 설렜다.

공항버스를 타고 도심까지 들어가는데 풍경이 마치 파랑과 초록이 어우러진 그림 그 자체였다.

벌써부터 에든버러에 오길 참 잘한 것 같았다.

웅장하고 거대한 스콧 기념탑을 처음 마주하는데 그 위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리는 백파이프 소리.

이때의 첫인상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에든버러를 떠올리면 차가우면서 시원한 공기와 파란 하늘 그리고 은은하게 깔리는 백파이프 소리가 떠오른다.

에든버러는 초록이 드넓게 펼쳐진 공간이 많았고 또 마치 중세시대에 온 것 마냥 건물이 클래식 그 자체였다.

클래식과 모던이 절묘하게 섞인 런던에 비하면 에든버러는 고유의 고풍스러운 멋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처음 와 본 도시이기 때문에 당연히 낯설었지만 완전히 다른 풍경에 더더욱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공항에서 밤을 새웠던지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 잠깐 들러 짐을 내려놓고 다시 길을 나섰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먼저 도착하여 서성이며 비눗방울을 구경하고 있었다.

펜팔친구인지라 사실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내향인인 나는 설렘반 벌써부터 낯가리는 마음반을 가지고 기다렸다. 수줍게 눈을 맞추는 친구를 발견하고 우리는 식당으로 갔다.

친구는 나에게 스코틀랜드 전통음식인 해기스를 대접해 주었다.

심지어 식당 예약까지 해서 말이다.

으깬 감자와 아마 순무로 추정되는 으깬 채소와 해기스였는데 오래간만에 먹는 첫끼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꽤 근사한 카페에 갔다.

심지어 카페마저 빅토리아 시대에서 볼 법한 인테리어였다. 의자도 무려 왕실에서 쓸만한 디자인에 벨벳인 소재였다.

영국에 왔다는 느낌이 물씬 들게 차를 마셨다.

이때부터인가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차를 즐겨마시는 편이다.

실제로는 처음 만난 친구였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서로가 너무 잘 맞았다.

낯가리면 어쩌지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우리는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국에 산다면 에든버러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만큼 참 예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게 바로 첫눈에 반한다는 느낌일까.


다음날은 에든버러 내셔널 갤러리에서 친구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친구는 이미 몇 번이고 갔을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흔쾌히 동행해 주었다.

내셔널 갤러리에는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작품이 있었고 또 놀란 게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품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작품 앞에서 그림을 따라 그리는 학생들과 사진도 찍으며 편안하게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반고흐의 '올리브나무'이다.

다음으로는 한참을 걸어 올라가 칼튼힐에 도착했다.

칼튼힐은 에든버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으로 과연 명소라고 볼 수 있다.

고풍스러운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니 왠지 숨 쉬고 싶을 때 운동 겸 오르면 좋을 것 같아 보였다.

사실 이 날은 친구의 생일이었다. 딱히 약속이 없다지만 생일같이 특별한 날에 여행객인 나를 위해 나와준 친구가 매우 고마웠다. 그래서 우리는 소소하게나마 달달한 핫초코를 함께 마시며 축하를 했다.

사실 이 핫초코가 너무 맛있어서 두 잔을 비워버렸다.

아쉽게도 이 가게는 코로나를 거치며 지금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산책하고 돌다가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은 전날 갔던 그 카페였다.

친구도 나도 새로운 곳 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곳을 선호했기에 같은 장소를 선택했다.

이번에 시킨 디저트는 스티키 토피 푸딩이었는데 쫀득하고 꾸덕하며 달달한 디저트 곁에 아이스크림 토핑이라니 이건 정말 다시 먹고 싶을 정도이다. 차와의 궁합도 참 잘 맞았다.

생각해 보니 이 날은 둘 다 단 음료와 단 디저트를 상당히 즐긴 것 같다.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 친구가 나에게 선물을 건넸는데 바로 스코티쉬 간식 태블릿이랑 태연 음반이었다.

에든버러에 사는 친구에게 태연 음반을 선물 받을 줄이야! 정말 뜻깊은 선물이었다.

태블릿도 사르르 녹는 달콤 느끼한 맛인데 먹을수록 중독성이 있어 야금야금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해가 기우는 벤치에 앉아 공기를 더 느끼다가 숙소로 향했다.

이 여행 이후로 우리는 자주 연락하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여행이 소중하고 좋은 인연을 이어준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숙소는 한인민박이었는데 난생처음 민박이라 염려가 있었지만 염려했던 게 무색하게 시설도 아주 깔끔하고 친절한 주인덕에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심지어 같은 방을 썼던, 정말 스쳐 지나가듯 만났던 언니들까지 간식을 야무지게 챙겨줘서 즐거운 기억이 가득하다.

외국에서, 그것도 에든버러에서 한식을 기대한 적이 없는데 아주 푸짐하고 맛있는 한식을 대접받았다.

내가 김치 없이는 못 살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해외에서는 현지 음식을 먹자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외국에서 한식이 아주 생각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한식을 마주하니 꽤 반가웠다.

심지어 생일 가까이 미역국을 먹을 수 있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새벽같이 비행기를 타고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갔다.

더블린에서 골웨이까지 가는 버스 시간이 비어서 카페에 앉아 커피와 스콘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일랜드에서 지냈던 터라 마치 집에 온 것 마냥 보다 편안 마음으로 커피를 즐겼다.

그때 먹던 스콘 맛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골웨이에 돌아오니 집이 흔들리며 폭우가 쏟아지던 스톰은 온데간데없고 아주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정말 집에 온 느낌이었다.

영국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생일 여행이라는 핑계삼이 계획한 영국여행.

여행 경험도 많이 없었고 학생의 신분으로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이었지만 비행기 지연도 겪고

공항에서 밤도 지새워보고 혼자 이곳저곳 명소도 들러보다가 결국 오랜 펜팔까지 실제로 만났던 아주 뜻깊은 여행이 되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되는 만큼만 즐기면서 만족했던 소박한 여행이었어서 그런지 후회도 없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설렘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더 이상 그때의 풋풋한 여행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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