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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여행, 난생처음 런던에 가다

by MARY

영국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선망의 나라였다.

매체에서 보이는 것부터 어릴 적 삼촌이 출장차 가서 간접적으로 보여줬던 영국은 환상 그 자체였다.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거리는 비행기로 채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출입국 심사까지 없으니 금상첨화이다.

그렇게 나는 아일랜드에서 맞는 생일날 혼자 영국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데 비가 심상치 않게 오는 게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전날부터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불긴 했는데 여행 아침날 비바람이 내릴 줄이야.

그럼에도 여행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내 우산은 집을 나선 지 10분도 안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꺾여버렸다.

이 바람은 마치 일기예보에서 태풍의 위력을 보여주는 영상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마침 태풍과 같은 스톰이 이 지역을 강타했던 것이었다.

더블린 공항까지 가는 버스에서 춤추듯 흔들리는 나무 때문에 내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전광판에 '지연'이라는 표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지연이었으나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 생일 여행을 위해 계획해 놓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어그러지고 있었다.

속상하고 지쳤지만 점점 취소되는 옆 비행 편들을 보며 제발 취소만 되지 말아 달라고 빌고 빌 뿐이었다.

간절함이 통했던 건지 5시간 지연 끝에 다행히 비행기는 떴고 나를 런던으로 데려갔다.

골웨이에서 4시에 일어나 3시간을 달려 더블린 공항에 도착해 5시간을 게이트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대기해 6시가 다되어 런던에 도착했다. 이미 거의 하루를 다 쓴 셈이었다.

하지만 런던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순간 피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드디어 영국에, 런던에 있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냥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감탄스러웠다.

가게, 건물 할 것 없이 눈에 사진에 아낌없이 담았다.

바로 내가 꿈꾸던 런던이다. 최대한으로 즐기고 싶었다.

아쉽게도 너무나 지연된 비행 편으로 이미 닫은 가게도 많았고 구경하고 싶었던 노팅힐 구역을 여유 있게 볼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생일 자축으로 세 가지 맛 아이스크림 콘을 먹었다.

당시 나름 거금이었지만 꽤 맛있었던 생일 만찬 같았다.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짧게나마 노팅힐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보고 예쁜 곳이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 분위기는 여전했다.

극 중 휴그랜트, 윌의 여행서적 서점 그 자리에 기념품 샵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키링과 기념품을 사고 영화 속에서의 그 기분을 느껴봤다.

영국의 상징 전화박스. 이 박스가 파란색이면 타디스일 테지.

금세 해가 졌고 런던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화려함과 고풍스러움이 동시에 묻어나는 이 런던, 여행 버킷리스트 1위였던 이 나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해가 져서까지 근사했다.

사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해가 지면 안전상의 이유로 거의 나가지 않는데 이번 여행은 얼마나 기대한 것이고

또 비행 편 지연 이슈로 인해 많은 시간을 잃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나가보기로 했다.

게다가 맘먹고 고른 숙소가 영 내키지 않아서 숙소에 있는 것보다 나가는 편이 낫기도 했다.

이런 빅벤을 볼 수 있었는데 숙소에만 있었으면 얼마나 아까울 뻔했나!

바람이 참 많이 부는 날이었는데 공사 중인 빅벤도 멋있었다.

바로 근처에 런던아이도 보였는데, 관람차 마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역시나 멋진 조형물이었다.

저 런던아이를 타보고자 영업시간을 확인했더니 딱 3분이 남았기에 깔끔하게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영 아쉬운 마음이 들어 런던아이 근처를 서성이는데 뭔가 유원지 같은 게 보이고 아직 운영 중인 기구가 있었다. 이미 식사도 못해 즐기지도 못해 졸지에 여행 와서 절약하게 되어서 돈은 상관 않고 저 기구에 올라탔다.

대기하던 중에 미국인 세 명이 일행으로 왔고 내 옆에 한 명이 앉았는데 세상 외향형인 사람이었다.

스몰톡 하다가 내 생일이라 여행하게 된 이야기를 했고 외향형에다 아마 기분파인 인 친구덕에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나는 갈길이 멀었기에 맥주 한잔 얻어마시고 이야기 좀 하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영국에서 처음 보는 미국인 친구들에게 축하받는 생일. 이런 생일을 보내는 해가 또 있을까.

너무나 특별하고 값진 날이었다.


다음날 런던은 여전히 흐렸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먼저 버킹엄 궁전. 저 넓은 대지에 근사하게 꾸며진 정원 하며 건물에서 위엄이 느껴졌다.

주변에 말 타고 다니는 왕실관계자도 볼 수 있었다.

장면을 전환하여 피카딜리, 코벤트 가든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런던에서는 그 어디를 봐도 다 볼 것이었다.

가게마다 들어가 봤는데 특색 있고 개성 넘치는 가게를 구경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보게 된 내 인생 첫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사실 큰 기대 없이 런던 가면 다들 보나보다 하고 보게 된 건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사람 목소리가 어쩜 저렇게 곱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감탄하던 차에 초 단위로 휙휙 바뀌는 무대 연출은 너무도 놀라웠다. 역시 보길 잘했다.

원래 하룻밤을 더 보내고 다음 목적지에 가는 일정이었으나 새벽같이 다시 거리를 다닐 용기가 없어서

최대한 즐기다가 공항에서 밤을 새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코벤트 가든에서 산 벤스쿠키도 있겠다 런던아이를 보면서 쿠키를 맛있게 먹었다.

런던아이를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어떤 가족단위 여행객이 사진을 요청하려는 듯 다가왔다.

나는 이미 소리를 듣고 한국인인걸 알았지만 저 가족은 몰랐을 터.

나중에 서로 한국인인걸 알고 반가워했다. 그 와중에 스몰톡하며 낸가 아일랜드에서 지낸다니까 나를 어찌나 기특하게 생각해 주시는지.

그러면서 한국 생각날 텐데 먹으라고 간식까지 챙겨주셨다. 참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그분들 덕에 영국에서 내가 나온 유일한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참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마지막까지 좋은 인상이었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난 경험이었다.

사실 저렴한 항공편만 찾다가 가게 된 스탠스타드 공항이었지만 나름 책도 읽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 공항 내 카페에서 알차게 밤을 지새웠다.

런던을 여행하며 산 런던 후드를 입고 말이다.

이번에도 지연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걱정한 게 무색하게 하늘은 청량하게 맑았고 무사히 에든버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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