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억을 상속받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만큼 자주 찾진 않지만, 그래도 입맛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피자를 처음 먹었던 순간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1990년 초, 국민학교 3학년 때 혹은 4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때까진 TV에서 본 적만 있지, 실제로 피자라는 고급(!)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며칠을 피자 사 달라고 떼를 썼다. 밤마다 엄마 아빠 둘 다 맨날 늦게까지 돈 버는데 그깟 피자 사 먹을 4천 원이 없냐고 빽빽 소리 지르다 잠들었다.(당시 내가 알고 있던 피자 한 판 가격이 4천 원이었다.)
도통 안 그러던 아이가 매일 피자 노래를 불러대니 부모님도 지쳤던지, 어느 주말 저녁에 대전 시내로 난생처음 그놈의 피자라는 걸 먹으러 갔다. 장소도 기억하는데, 은행동에 있었다가 얼마 후 사라진 웬디스 체인점이었다.
생전 처음 시킨 피자는 하얀 치즈에 고기가 듬성듬성 박힌 불고기 피자였다. 네 가족에 맞춰 네 조각으로 나뉜 피자가 TV에서 본 것과 모양새가 영 달라서, 그리고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피자 전문점도 아닌 햄버거 가게에 가서 피자를 먹었으니 제대로 된 피자였을 리가 없다. 게다가 아마도 콤비네이션이나 다른 피자는 좀 더 비싸다는 이유로 그나마 싼 불고기 피자를 시켰을 테니 TV에서 본 것과 모양도 꽤나 달랐던 것도 이해가 된다. 딱딱한 패스트푸드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가족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맛없다고 돈 아깝다고 내내 불평하지 않았을까.
피자도 피자지만 사실 그 날은 여전히 스냅샷처럼 또렷하게 남아있는 장면 때문에 내겐 좀 더 특별한 날이었다. 쌀쌀한 밤 기운을 느끼며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데 중앙데파트 즈음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짐짓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나와 동생을 돌아보고선 이야기했다.
“오늘 피잔지 뭔지는 몰라도 우리 자식들 이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 보니 기분 최~고다. 그동안 돈 번다고 너희들이랑 시간을 많이 못 보낸 것 같아 그건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외식하자. 아빠랑 너희들이랑 약속!”
정확한 말이야 기억 안나지만 대략 이런 느낌의, 결의에 찬 선언이었다. 정말? 정말? 한 달에 한 번씩 외식이라니! 그 자리에서 동생과 마냥 팔짝팔짝 뛰었다. 아버지의 즉흥적인 약속이었던지라 물론 그 다음에는 흐지부지 되어버렸지만, 그날 밤 행복해보였던 아버지의 모습은 패스트푸드점에 가거나, 피자를 먹을 때면 종종 생각나곤 한다.
돌이켜보면 그날 밤의 아버지 모습이 내겐 오래도록 ‘믿음직한 가장’의 동의어였다.
30대 중반,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버지가 남겨놓고 간 사소한 추억을 퇴근길에 더듬으며, 이미 곤히 잠들어 버린 아이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어 본다.
......
아빠,
지난주에 아이들 데리고 외식했어요. 보고 계시죠? 저희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요.
1년 전 이맘때 황망한 마음은 이제 많이 가셨지만, 아이들 하루하루 클 때마다 아빠 얼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요. 꿈속에서나마 자주 보고 싶은데 그것조차 맘처럼 쉽지 않네요. 오늘은 맥주 한 잔 옆에 놓고 옛날 사진들 보며 아쉽고 헛헛한 마음 조금이나마 달래 봅니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