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돌고 돌고 돌고 (38)
1.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가상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가상세계를 다시 현실세계로 옮겨놓는 역량만 놓고 본다면 디즈니는 현존 기업들 중 가장 앞서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테슬라의 로봇 프로젝트를 보며, 테슬라의 경쟁자는 종래의 자동차 기업들이 아니라 어쩌면 디즈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테슬라는 지난 8월 19일 AI데이를 통해 휴머노이드 '테슬라봇'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기존 자율주행차 개발 과정을 통해 발전시킨 칩과 센서를 활용, 반복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입니다. 실제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론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테슬라가 지향하는 미래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여행에 이어 로봇이라니... 듣는 사람들의 가슴이 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3. '꿈의 공장'이라는 측면에서 테슬라는 디즈니와 맞닿는 지점이 있습니다. 1950년대 디즈니랜드 개장 때부터 디즈니는 영화 캐릭터들이 인간과 함께 숨 쉬는 세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해왔고, 그 꿈을 대중과 함께 공유하며 성장해왔습니다. 올해 4월 디즈니의 연구개발 조직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Disney Imagineering)에서 공개한 그루트 로봇 영상은 디즈니가 꿈꾸는 미래를 보다 구체적으로 만나게 해 줍니다. 그루트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댄스 영상과는 또 다른 경이로움이 느껴집니다.
4. 디즈니의 로봇 개발은 생각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디즈니는 1960년대부터 꾸준히 애니마트로닉스에 투자해왔습니다. 애니마트로닉스(animatronics)의 사전적 정의는 '영화 등을 위해 사람이나 동물을 닮은 로봇을 만들고 조작하는 과정'입니다. 디즈니는 애니마트로닉스 기술을 영화 제작뿐만 아니라 테마파크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동작을 구현하는 데에도 사용하면서 수익을 창출해왔습니다.
5.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을 방문하여 실제 그루트 로봇을 만난 NYT의 브룩스 반즈는 디즈니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로봇기술을 활용, 자사의 작품들과 테마파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고민을 꾸준히 해 오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디즈니가 R&D를 통해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은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 수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기 위한 로봇 기술, 그리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다양한 작품에 기술을 반복적으로 적용시킴으로써 영상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루트는 현재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한 쇼케이스에 가깝습니다.
6. 테슬라는 디즈니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꿈을 현실로'라는 테마를 일궈나가는 기업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번 AI 데이에서 등장한 '테슬라봇'은 디즈니를 연상하게 할 만큼 과감한 꿈입니다. 꿈에 관해서라면 원조(?) 격인 디즈니 역시 로봇 개발에 열심이라는 점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최고의 입지를 다져 온 두 기업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로봇을 개발해나갈지, 그리고 그 로봇들이 미래를 어떻게 바꿔나가게 될지 앞으로도 계속 궁금해질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퍼블리 '커리어리'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 이미지 출처: Walt Disney Imagineering via TechCrunch
참고한 기사
Are You Ready for Sentient Disney Robots?
(The New York Times, August 19, 2021)
Disney Imagineering’s Project Kiwi is a free-walking robot that will make you believe in Groot
(Techcrunch, April 23,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