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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Mar 10. 2022

나이 드는 건 저주가 아니야

아이 보며 애니 보기 20 -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일요일 아침, 창밖으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길래 봄이 왔구나 싶었다. 늘 뭐든 미루고 보는 게 익숙하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볼까...' 싶은 마음이 밀려드는 날씨였다.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겨우내 묵혀 둔 신발장 청소에 나섰다. 아무렇게나 대충 처박혀 있던 신발들을 하나씩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가지런히 정리했다. 집에 신발이 이렇게 많았던가? 꾸역꾸역 많이도 나온다… 싶던 순간, 앙증맞게 생긴 빨강 구두, 노랑 운동화, 파랑 샌들과 마주했다.


어른 신발의 반도 채 안 되는 신발들. 아이들이 신고 다니던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요즈음엔 통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저렇게 작은 신을 신고 있을 때도 있었지 하며 이제는 추억을 떠올리는 용도만 남아버린, 과거의 흔적들이다.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옷도 신발도 점점 작아진다. 


미리 사서 쟁여뒀던 한 치수 큰 옷을 꺼내어 입힐 때의 기쁨은 부모에게는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늘 겪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 소소한 안도감에 마음 한쪽이 넉넉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조금 더 큰 옷으로 바꿔 입는다는 건 눈으로 확인 가능할 만큼 큰 변화이니까. 아이들은 그렇게 가끔씩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툭 부모에게 자신들의 성장을 기쁨으로 바꾸어 나눠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거 어쩌나 싶은 마음도 든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나고 있는데, 나는 점점 나이가 들고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쪽저쪽 흰머리만 쑥쑥 늘어간다.





"빨리 다 키웠으면 좋겠어요."

"다 키우면 좋을 것 같지? 그런데 생각해봐라. 그때면 너도 늙어. 노인이 돼. 우리들처럼."


얼마 전 만났던 고모에게 애들 키우기 힘들다는 푸념 섞인 이야기를 하다 들었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쉬움을 남기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복닥복닥 지낼 수 있을 때 그 순간을 즐기라는 조언. 물론 '쉽진 않겠지만...'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으나.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노화를 이야기의 소재로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 소피는 마녀의 저주에 걸려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녀다. 아이들은 젊고 예쁘고 상냥하기까지 한 소피가 하룻밤 새 할머니로 변해버리는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본다. '아니, 저렇게 순식간에 할머니가 될 수도 있단 말이야?' 이미 몇 차례나 봤던지라 나중엔 결국 훈훈하게 영화가 마무리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여전히 늙는다는 것,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노화조차도 SF 세계관의 일부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만 그러한가. 나도 그렇다. 스무 살 때 서른이 될 거라 생각 못했고, 서른 살 때 마흔이 될 거라 생각 못했던 것처럼, 여전히 노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꽤나 어색한 일이다. 할머니로 변해버린 소피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불편을 느끼는 것처럼, 지금보다 몸은 더 무거워질 테고, 눈은 더 침침해질 것이다.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미래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직 막연하고 아득한 노년의 삶에 대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나이듬이 반드시 두려워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신체적 활력은 떨어지겠지만, 그때는 또 그 나름의 삶이 있을 테니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영화 속 소피는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삶'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늘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사는 데 익숙했던 소피는, 할머니로 변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하울을 비롯한 새로운 친구들에게 다가선다. 영화는 소피에게 걸린 저주가 점차 행복으로 바뀌어가는 역설적인 상황을 지브리 특유의 영상미로 그려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OST는 히사이시 조의 수많은 곡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곡이다. 노래를 들으며,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회전목마는 롤러코스터 같지 않아서 아주 어린아이도, 나이 많은 노인도 모두 함께 탈 수 있지 않은가. '인생의 롤러코스터'였다면 아주 살짝 실망할 뻔했다. 


영화 속 소피를 떠올려본다. 할머니로 변한 삶을 저주로 여겼던 것은 소피 자신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피가 걸린 마법은 소피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계기로서 작용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이야기다. 


아이들과 나는 같은 우주에 살며 같은 순간을 보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의 미래를 앞두고 있다. 아이들은 날로 성장해갈 것이고, 나는 날로 소멸해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도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유의해서 봐야 할 항목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가지만, 괜찮다. 예전처럼 밤새워 일을 해도 끄떡없는 시절은 애초에 지났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러다 어느 순간 백발노인이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며 그것도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젊을 때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흰머리 외에 새로이 얻는 것들도 꽤 많을 것이다.


아이들은 다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장성한 그들과 또 그 세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사십 대의 내가 십 대의 소년을 만나고 있는 것처럼, 오십 대의 나는 이십 대의 청년을, 육십 대의 나는 삼십 대의 어른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만남이다. 순간순간의 만남에서 기쁨을 얻으며 지내야겠다. 아이들도 또한 커가며 계속 지금과 같은 귀염귀염 레벨을 유지하진 못할 테니. 


배드민턴 치러가잔다. 책상에서 그만 꾸물대고 얼른 채비해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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